<분수대>초고층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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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하늘로 치솟은 초고층(超高層)빌딩은 마천루(skyscraper)로 불린다.1880년대 마천루라는 말이 처음 도입됐을 때엔10~20층 건물을 지칭했다.20세기 후반 이후 40~50층은넘어야 명함을 내민다.
강철 골조(骨組)와 엘리베이터의 발명 등 두가지 기술발전이 초고층 건축을 가능케 했다.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높이 3백짜리 철탑 파리의 에펠탑은 미국에서 마천루들이 솟아날 때까지 40여년간 세계 최고를 누렸다.엘리베이터는 엘리사 오티스가 1857년 뉴욕의 백화점에 처음 설치했다.
마천루 건축의 기능이론가 루이 설리번은 공리적(功利的)측면과표현적 측면 두가지를 강조했다.『마천루는 우선 자랑스럽게 솟아오르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좁은 도심의 비즈니스공간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그 도시의 긍지와 이미지를 담기 때문이다.
1974년 완공된 시카고의 1백10층짜리 시어스 타워(4백42)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의 빌딩이었다.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보다 30가 더 높았다.뉴욕과 시카고 두 도시간 라이벌 관계의 한 상징이다.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의 88층짜리 페트로나스 타워(4백52)의 준공으로 시어스 타워는 왕좌를 빼앗겼다.그러나 시카고측의 자존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페트로나스 타워가 10 더 높다지만 덤으로 올린 첨탑 때문이며 첨탑을 뺀 꼭대기층 천장을 기준으로 하면 시어스 타워의 지붕보다 오히려 64가 낮다는 주장이다.69년 발족한 세계고층빌딩 카운슬은 빌딩 높이를 지상의 현관바닥에서 꼭대기 구조물의 천장까지로 규정한다.국기봉이나 TV안테나 높이는 제외되지만 장식적첨탑은 계산에 넣는다.
말레이시아측은 시어스 타워를 누르기 위해 당초 설계에는 없던첨탑을 추가했다.시카고측은 이 장식용 「모자」부분은 빼고 실제사용중인 층(層)으로 정의(定義)를 바꾸자고 로비를 벌였으나 카운슬측은 듣지 않았다.중국 상하이(上海)의 9 5층짜리 세계금융센터(4백60)가 2001년 준공되면 페트로나스 타워는 어차피 왕좌에서 밀려난다.
「세계 제일」 또는 고속성장의 과시용으로 초고층 건축 경쟁은아시아에서 불을 뿜는다.미국의 빌딩설계업계가 때를 만났다.한 국가 또는 도시의 「프라이드 높이」로 인식될 경우 초고층 경쟁은 하늘높은 줄 알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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