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연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이 11일(현지시간)로 예정했던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계획을 연기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1일 오전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일본 외상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통보했다고 지지(時事)통신 등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두 사람은 이날 전화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포함한 북·일 관계 진전에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일 양국이 협력을 강화해 나가자는 방침을 재차 확인했다.

고무라 외상은 “11일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는 없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은가”라고 물었고, 라이스 국무장관은 “그렇다”고 말했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연기를 표명한 것은 처음이다.

◇이유와 전망=미 정부는 6월 26일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방침을 의회에 공식 통보했다. 규정대로라면 45일 만인 11일부터 북한은 20년간 짊어져온 테러지원국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지난달 10일 베이징 6자회담에서 북한에 제의한 핵신고 검증체제 구축안을 북한이 거부하면서 틀어졌다. 양국 간 의견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미국의 검증 초안은 영변 핵시설과 북한이 축적해온 플루토늄·핵무기 현황은 물론 북한이 부인해온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과 시리아 핵확산까지 총망라했다. 검증 방식도 모든 의심 시설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은 검증대상은 영변 핵시설에만 국한되고 검증방식도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또 테러지원국 해제가 지난달 완료한 핵프로그램 신고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라며 미국의 검증체계 구축 요구에 반발했다. 오히려 한국 내 핵의심 시설에 대해 사찰권을 요구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등 협상파들은 “11일은 해제 조치의 최종 시한이 아니다”며 “며칠 안에 타협이 이뤄져 테러지원국 해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북·미 간에 본격적인 협상 기미는 보이지 않아 교착 상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교 소식통들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너무 양보했다’는 미국 내 강경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검증 국면에서 북한을 압박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강찬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