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정연주 사장, NHK 회장들 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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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런 NHK에서도 지금까지 총 세 명의 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사임한 적이 있다. 첫 불명예 퇴진 주인공은 시마 게이지(島桂次) 회장이었다. 그는 1991년 4월 국회에서 미국에서 발사 실패된 방송위성에 대해 “방송위성 발사 실패 당시 뉴저지주의 GE사에 있었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 뒤늦게 시마 회장이 LA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파문이 확산됐고 그는 1주일 만에 사임했다. 당시 NHK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인 경영위원회는 시마 회장의 퇴진을 만류했다.

그러나 시마 회장은 “국회에서 내 잘못된 답변으로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 NHK를 생각한다면 내가 물러나는 게 맞다”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선 직원 비리 때문에 회장이 잇따라 사임해야 했다. 97년부터 3년 임기인 NHK 회장을 3차례 연임해 온 에비사와 가쓰지(海老澤勝二) 회장은 제작비 착복 등 직원 비리가 불거지면서 2005년 사표를 썼다. 처음에는 “임기는 채우겠다”고 했지만 NHK에 대한 불신의 표시로 시청자 사이에 수신료 납부 거부 움직임이 일자 그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해는 NHK 보도국 기자 등 3명이 동료의 특종 기사를 이용해 주식에 투자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하시모토 겐이치(橋本元一) 회장이 올 1월 임기 만료 3일을 앞두고 “책임지겠다”며 전격 사임했다. 나가이 다에코(永井多惠子) 부회장도 동반 사퇴했다.

NHK의 반성은 최고경영자의 퇴진으로 그치지 않았다. 자회사 30% 감축과 구조조정·임금삭감·프로그램 폐지 등의 고강도 경영계획안을 마련했다.

반면 KBS 정연주 사장의 최근 행동은 NHK 전 회장들과 너무나 대비된다. KBS는 정 사장의 재직 5년 동안 경영 악화로 인한 사상 최악의 누적적자에 직면했고, 2004~2007년 자체 감사에서 공금 횡령 등 사건만 130건이 지적됐다. 이런저런 이유로 감사원은 지난주 정 사장의 해임 요구를 했고, KBS 이사회는 해임 제청안까지 결정했다. 그런데 정 사장은 이를 거부하면서 법적 대응에 나설 기세다.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은 공영방송은 설 자리가 없다”는 시마 회장의 퇴임사를 되새겨 봐야 할 시점이다.

박소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