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선정위원회’가 고른 新고전(29)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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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 15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8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지금이 2008년이니 초판이 발행된 이후로 30년이 흐른 셈이다. 30년 동안 한국소설을 거론할 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건너뛰는 사람을 여태 보지 못했다. 나는 한때 이 소설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는 것이 의아했다. 이 소설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어떤 통과의례가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가끔 이 소설이 어렵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만나면 책 속의 한 문장 ‘지구에 살든 혹성에 살든, 우리의 정신은 언제나 자유이다’에 밑줄을 그어놓고 대학에 들어가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말해주곤 했다.

그 다섯 식구는 오늘도, 지옥에서 천국을 꿈꾼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각 문예지에 연작으로 발표될 때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던 작품들이 수록돼 있다. 한 편 한 편 따로이면서 다 읽고 나면 한 시대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장편소설이 된다. 나는 이 책을 79년에 읽었다. 갑작스러운 이향으로 느닷없이 도시 빈민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읽게 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그동안 내가 읽었던 모든 책을 한순간에 뒤돌아보게 했다. 완전히 이해하고 읽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 전에 읽은 책들 중에서 어떤 것이 양서이고 어떤 것이 안 읽어도 되는 책이었는지를 판가름해 주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소설이란 이런 것이구나 짐작이 왔다. 그 당시 소녀였던 나의 눈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난쟁이 가족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으니.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리얼리즘 계보의 소설이다. ‘잘살아보세’라는 노래가 만들어지고 그 노래를 구호처럼 입에 달고 살았던 시대. 잘살게만 되면 그 과정이 어떻더라도 상관없었던 70년대가 배경이지만 급속도로 사회가 산업화 사회로 바뀌어가던 그 시대에 갇혀있는 소설도 아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우리에게 리얼리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난쟁이 가족으로 상징되는 착취당하는 자들의 스토리만이 아니라 의식을 명징하게 꿰뚫고 지나가는 문체를 주시하게 했던 소설이다. 상처로 얼룩진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처럼 읽는 이의 보이지 않는 폐부를 응시하는 것 같은 단정한 단문은 견고하면서도 날카롭다. 그런데도 또한 무한한 틈을 품고 있다. 그 틈을 상상력으로 메워가는 사이 정신은 고양된다. 이런 식이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어머니, 영호, 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다.”

이 단문으로 이루어진 건조하기조차 한 문체는 누구도 억압시키지 않지만, 자유롭게 풀어놓지만, 어느새 소설 속의 화자 ‘나’가 ‘사람들은’ 이라고 지칭하는 대상이 혹시 내가 아닐까? 싶은 질문과 마주치게 한다. 그리고 곧,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는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와 마주치게 되면 난쟁이 가족들을 목숨이 위태로운 고통 속에 몰아넣는 그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든 나라도 응징해야 되지 않을까? 싶은 각성상태로 읽는 이를 데려다 놓는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1978, 이성과 힘(2000)

“큰오빠는 화도 안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
“그래. 죽여버릴게.”
“꼭 죽여.”
“그래. 꼭.”
“꼭.”

난쟁이 아버지를 생각하며 화자가 울 때 그들이 처한 슬픔과 고통에 마음이 함께 흔들리고 그들의 다짐에 동참하게 되고, 그 순간 내가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성숙한 순간이 온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한 시대를 아우르는 리얼리즘 소설이면서 그 시대에 갇히지 않고 오늘도 굴뚝 위에 앉아있는 난쟁이가 우리 삶 속에 질문을 던지는 인물로 남게 된 것은 착취당하는 자와 착취하는 자 사이의 고통스러운 상황이란 계급 문제를 이처럼 인간에 대한 성찰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전망이 거의 차단돼 있었던 때에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이런 인문주의적 작품이 탄생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생존하기 위한 투쟁과 절망이 공존하지만 그것마저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가 때로 이 작품을 아름답게 느끼게 하기도 한다. 문체와 사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문체는 곧 사상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잘 보여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