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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D데이 4일로 잡은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최근 판문점 사태의 미스터리중 하나는 「평양이 왜 4월4일을D데이로 택했을까」하는 것이다.시점이 특히 관심의 대상이 되는것은 한국의 총선 때문이다.한마디로 4.11 총선 스케줄과 그것이 가져올 파급효과를 잘 알만한 평양이 왜 선거를 1주일 앞둔 시점에서 일을 벌였는가 하는 것이다.한.미 양국이 파악하듯이번 도발이 우연한게 아니라 치밀한 계획적 책동이라는 데서도 그들의 시기선택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물론 투표함을 열어봐야겠지만 북한이 4일 정전협정 파기선언을하고 이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연 사흘동안 무력시위를 벌인결과 여당이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사실은 여러 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그렇다면 북한이 여당을 돕기 위해 일을 저질렀다는 것인가.아니면 여당이 대북 쌀지원으로 곤욕을 치른 지난해6.27 지방선거때 처럼 골탕을 먹이기 위해 도발을 했는데 오히려 도움을 줬다는 것인가.』 유치한 듯하면서도 의미있는 이런의문은 비단 정치권 뿐 아니라 대 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제기되고 있다.이와 관련,대북 전담부서인 통일원은 이번 사태가 평양의 경직된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롯됐을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한 고위당국자는 『이번 사태는 인민무력부 작품』이라고 단언한다.남한 사정을 손금 보듯 들여다 보는 대남사업 부서인 노동당 3호청사가 처음부터 일을 꾸몄으면 결코 4일을 D데이로 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통일원 관계자들은 김일성(金日成)사망후급격히 위상이 강화된 인민무력부가 3월말께 김정일(金正日)에게북한내부 의 어려움도 호도할 수 있는 「정전협정 파기계획」을 올렸으며,클린턴 방일(16일)과 북.미 미사일협상(19일)을 염두에 둬 D데이를 4일로 잡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문제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대남부서인 3호청사가 개입할 틈이 없었 다는 것인데 김정일이 인민무력부가 올린 계획을 수표(재가)하자 뒤늦게 이 사실을 안 3호청사는 재고를 요청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북한처럼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무오류성(無誤謬性)을 강조하는 체제에서 「지도자 동지」가 한번 결정한 사안에대해 하급기관이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통일원은북한이 판문점 무력시위를 중단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추론하고있다.김정일은 자신이 조성한 비무장지대(DMZ)긴장상태가 결과적으로 남한 집권여당을 돕는 「이적(利敵)행위」가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그것도 자체 분석이 아니라 한국언론을 통해서)병력 투입을 중단시켰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통일원의 이같은 추론은 북한의 도발이 내부문제 해결과 대미(對美)관계등을 의식한,한국총선과는 관계없는 순전히 「비정치적」인 행동으로 파악하는 것이지만 한국유권자 표의 향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총선변수가 됐기 때문에 남북문제가 아 닌 국내 정치문제로서도 한동안 입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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