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테스" 토머스 하디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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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삼각관계만큼 흔한 이야기도 없는데 「테스」가 과연 그리 명작일까요.』비디오로 토머스 하디의 생애를보고 난 학생이 묻는다.그들에게는 나스타샤 킨스키가 주연한 영화가 짙게 각인돼 있다.
아니 여자가 한명도 안 나온단 말이야? 영화건 소설이건 위대한 작품치고 남녀간의 사랑을 다루지 않은 게 거의 없어.안그럴때면 우리는 게걸스레 묻는다.그러나 잘 쓰인 작품치고 사랑이야기가 바로 그것에서만 멈추는 법은 없다.작가의 진짜 속내는 그뒤에 숨어 있게 마련이다.산업사회의 문턱으로 진입하던 19세기말 다윈의 진화론은 서구의 사상과 문화에 회의주의를 심는다.하디도 변천하는 역사의 일부로써 당대를 반영한다.몰락한 봉건지주의 후예인 테스,급부상하던 신흥자 본계급의 알렉,그리고 그런 틈새에서 고뇌하던 지성인 앤젤.테스의 아버지는 지나간 가문의 영광을 못잊는 무능한 현실도피자요,어머니는 딸의 미모에 의지해생계를 꾸려보려는 나약한 여인이다.이런 환경에서 테스는 즉자(卽自)적이고 관능적인 알렉에게 순결을 잃고 앤젤의 구애를 선뜻받아들이지 못한다.고백의 기회를 놓치고 두사람이 결혼한 첫날밤테스의 과거는 앤젤을 실망시키고 그는 그녀를 버린다.그리고 너무도 늦게야 다시 나타난다.
앤젤은 누구인가.그는 목사집안에서 태어나 신학대를 나왔으나 교회가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유로 목사직을 거부한다.그리고 목장에서 젖짜는 일을 한다.누구보다 자유주의자였던 그가 테스의 과거를 용서하지 못한다.
의식으로는 자유주의자였으나 무의식에 자리한 인습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했던 지성인.
테스는 이런 세 계층에 의해 희생된다.하디는 그녀를 위해 서술하지만 사실은 사회개혁의 가능성을 지닌 단 하나의 인물,앤젤을 향해 말한다.머리와 가슴의 틈새를 보라고.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모든 지성인들을 위해 작가는 한 여인을 희생시킨 것이다. 영화는 소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지만 소설 역시 영화가 할 수 없는 것을 한다.그래서 잘 쓰여진 작품은 몇번씩이나새롭게 영화로 만들어지는가 보다.
(경희대교수.문학평론가) 권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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