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일기>KBS2 "프로젝트" 상훈役 황인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해외로케 전문배우」.
데뷔때 붙은 이 별명이 『프로젝트』로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94년 첫 출연작인 MBC드라마 『까레이스키』 촬영중 무려 1백50일간을 이역만리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아타에서 지낸 나는 해외상사원 「상훈」으로 분한 『프로젝트』에서도 미 국.브라질.
헝가리등 6개국에서 90일을 보냈다.로케가 흔한 영화배우들도 이런 장기외유는 없다.결국 나는 드라마 단 두편에 출연한 신인이면서도 로케기간만은 앞으로 몇년간 깨지기 어려울 국내 최장기록을 갖게됐다.
말이 좋아 로케지 해외촬영현장은 「지옥」그것이었다.알마아타에서는 섭씨 50도가 넘는 더위에 소금땀을 흘렸고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에 있던 러시아 로케장에선 반대로 영하50도의 혹한에 손발이 얼어붙었다.먹을 것도 변변치 못해 빵 한쪽 에 10여명의 연기자가 개미처럼 달라붙었고 포장마차 소주 한잔이 그렇게 그리울 수 없었다.촬영팀이 2개조로 나눠 철야제작한 『프로젝트』에선 72시간동안 잠 한숨 못자고 연기한 끝에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배우를 괴롭히는 건 이런 외부적 조건이 아니다.드라마반응이 기대만큼 나와주지 못했을 때 배우는 가장 깊은 절망감에빠진다.얼마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TV 페스티벌에서 우수상을 받을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은 『까레이스키』가 흥 행면에선 시청률한자리의 참패를 당했을 때가 그랬다.
다행히 이번 『프로젝트』는 개인적으로 『연기가 한결 좋아졌다』는 칭찬과 함께 출연제의가 쇄도해 힘들었던 과거를 보상받는 느낌이다.이 드라마가 『모래시계』처럼 대히트할 것이라는 내 예상은 빗나갔지만 한국젊은이의 꿈과 기개가 세계를 향해 펼쳐지는과정을 그린 기념비적 작품이란 점에서 나만의 보람을 만끽하고 있다.서구적 체형과 남성미 넘치는 외모(?)를 가졌으면서도 선해보이는 인상때문인지 지금까지 나에게 주어진 배역은 유약한 지식인 스타일이 전부였다.
이 작품이 끝나면 뒷골목에서 온갖 풍파를 겪은 뒤 사회에 눈을 뜨는 의식있는 청년같은 묵직한 역을 한번 해보고 싶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