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예측방송 왜 어긋났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총선 당일 투표시간의 마감을 알리는 오후 6시 정각에 방송사들은 일제히 정당별 의석수를 예측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2000년 총선의 예측방송이 빗나갔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방송사들은 예측방송의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예측보도는 개표 결과와 큰 차이를 보였다. 열린우리당의 의석수를 과대하게 예측한 반면, 한나라당의 의석수를 과소하게 예측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청자들은 '이번에도 역시'하면서 예측방송의 오류를 나무랐다. 방송사들의 해명방송과 사과방송이 뒤따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예측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보수적 유권자들이 출구조사나 여론조사 요청을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소수파로 내몰리는 고립을 우려했거나 조사기관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보수적 유권자들이 표심을 숨기는 경향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출구조사나 전화여론조사 요청을 거절한 '무응답자'의 상당수가 한나라당 지지자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아무튼 이번 예측방송을 통해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침묵성향이 재확인됐다.

반면에 진보적 유권자들은 어떠했는가. 자신을 다수파로 인식한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은 지지후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했다.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은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구도에서 '민주'편에 서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지지세력을 규합하고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소수파였던 민노당 지지자들도 열린우리당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적극적이고 공세적이었다. 공무원노조는 위법이라는 지적을 받으면서까지 민노당에 대한 지지선언을 발표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지성향의 보수적 유권자들이 여론조사나 출구조사의 응답을 회피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해서 그들이 항상 표심을 감추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보수적 유권자들도 그들과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과 만났을 때에는 선거를 핵심적인 대화주제로 삼으면서 거리낌없이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한다.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같이하는 사람들과의 정치토론은 너무나 원만하게 진행되어 손쉽게 결론에 도달한다. 그들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를 더욱 확고하게 굳혔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고 난 뒤 야당 국회의원들은 역풍의 규모가 그렇게 크게 불어닥칠 줄은 몰랐다고 고백했다. 경륜과 경력을 자랑하는 기성 정치인들이 모인 정당이 그런 초특급 역풍을 예측하지 못했으니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은 없다. 왜 그랬을까? 주변에 그들과 생각이 비슷한 보수적 정치인과 보수적 유권자들만 넘쳐나서 탄핵안에 대한 찬성과 성원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것이다. 탄핵반대 목소리나 탄핵 역풍을 우려하는 지적을 별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반대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거나 그럴 만한 의사소통 창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탄핵안 가결을 주도했던 야당의 한 정치인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실업자이거나 동원된 군중으로 평가절하했다.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을 때에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방송사들은 보수적 유권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못해 예측방송에 실패했다.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킨 야당도 탄핵에 반대하는 바닥민심을 듣지 않아 탄핵역풍을 예상하지 못했다. 17대 총선의 결과를 놓고 황금분할이라는 표현을 쓴다. '진보'를 표방하는 민노당과 '중도진보'성향의 열린우리당, 그리고 '중도보수' 성향의 한나라당 등이 17대 국회라는 한 배에 올라탔다. 승리감에 도취된 어느 정당이나 정파라도 반대 목소리를 경청하는 데 실패한다면 정치적 오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윤영철 연세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