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레터] 옛날 교과서를 보러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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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서울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시작된 전시회 ‘1948 그리고 오늘’에 다녀왔습니다. 건국 60주년 기념 특별 도서전입니다. 전시 도서 200여 권 정도의 작은 규모였지만, 책에 담긴 우리의 지난 60년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특히 교과서 코너가 그랬지요. 1946년 군정청 학무국에서 발간한 『초등공민-제삼사학년이 함께 씀』은 표지가 이면지였습니다. 조선총독부가 냈던 교과서 『初等修身(초등수신)』의 표지 뒷면을 활용했답니다. 광복 직후, 물자가 귀했던 시대상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1과 ‘개천절’, 2과 ‘한글기념일’ 등으로 짜인 책 내용은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단기 4281년’이라고 출간연도가 표기된 『초등셈본 3-1』도 들춰봤습니다. “아버지께서 공작에 쓰는 색밀짚을 세 묶음 사다 주셨다. 한 묶음에 20개씩 묶여 있었다. 모두 몇 개이냐?” “마늘을 1줄에 11개씩 6줄을 심었더니 7개가 남았다. 마늘이 몇 개였겠느냐?” 등 수학 문제 하나하나에도 1948년 당시의 생활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냐?”“∼되느냐?” 등 문장이 반말로 끝나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1960년도판 『실과6-여자용』은 한참을 들여다봐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채소 가꾸기와 음식 만들기, 누에치기와 아기 돌보기, 병간호 하기 등을 고루 다루었더군요. ‘자동식 전화기’를 사용하는 방법도 무려 여섯 단계로 나눠 설명해 줍니다. “제대로 번호를 돌려도 찌익찌익 소리가 나면 상대방이 이야기 중이거나 고장인 때므로 조금 있다 다시 걸어봐야 한다”란 식입니다.

‘유숙신고’란 제도도 『실과6』을 읽고 알게 됐습니다. “어젯밤 차로 외삼촌이 오셔서 유숙신고를 가져와 외삼촌의 나이와 본적, 현주소, 오신 용무, 출발하시는 날짜와 곳을 적어 동네 반장, 통장님의 도장을 받아 파출소에 갔더니 증명계 순경이 이것을 보시고 ‘적는 방법이 제대로 되었구나’하고 칭찬을 하시며 기록부에 적어 넣으시고 도장을 찍어 주셨다”란 내용을 통해서지요.

이 책의 마지막 과 ‘우리들의 장래’ 부분에서는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실과책 읽고 감동받을 줄은 예상 못한 일입니다. 책은 “상급학교 진학을 못한다고 공부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 집안일을 하면서나 또는 직장에 취직을 하고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 사람은 각자의 굳은 결심 하나에 따라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면서 링컨과 에디슨의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취직 후의 주의 사항도 함께 일러 줍니다. “남의 말을 하지 않는다”“남의 심부름을 확실히 한다”“그 곳의 물건을 소중히 한다” 등을 당부하면서, “위와 같은 일에 주의하여 착실히 잘 하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나 칭찬을 받게 되며 이런 사람이야말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초등 6학년 졸업생에게 이런 ‘장엄한’ 조언을 했던 게 반세기 전 현실입니다.

누렇게 변해버린 책 갈피갈피에서 쏟아져 나온 우리의 옛 모습에 취해 한참을 전시실에 있었습니다. 도서전은 이달 31일까지 계속됩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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