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냉전시대식’ 남북 외교전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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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 피격 사망 사건의 국제 공조를 추진하던 정부에 대해 북한이 ‘10·4 정상선언’(2007년)에 대한 국제 이슈화로 대응하며 새 정부 들어서의 남북 간 대치가 국제 무대로 확대되고 있다. ‘한·미 동맹 균열’ 논란까지 들으면서 남북 관계 개선을 추진했던 지난 10년의 진보 정부에선 잊혀졌던 새로운 양상이 등장한 것이다.

외교전은 10·4 선언에서 시작됐다. 그동안 정부가 10·4 선언 이행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던 북한은 외교 관계가 수립돼 있던 아세안 국가들과 자신들의 발언권이 여전히 살아 있는 제3세계 비동맹 국가들을 통해 문제 제기에 나섰다. 반면 정부는 10·4 선언을 놓고 불똥이 튀지 않도록 대응 외교에 나섰다.

10·4 선언을 둘러싼 남북 간 신경전의 배경엔 이 선언을 바라보는 남북의 입장 차가 숨어 있다. 10·4 선언 4항은 ‘남북은 현 정전 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한다’고 돼 있다. 발표 당시 가장 주목받았던 조항이었다.

말 그대로 남북과 미국, 또는 남북과 미국·중국이 만나 한반도에서 종전을 선언해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체제 보장을 해준다는 의미다. 북한은 올 1월 1일 신년 공동사설에서 ‘10·4 선언을 철저히 이행해 대결 시대의 잔재를 털어 버리고…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며’라고 명시해 올해 ‘국정 목표’ 중 하나로 10·4 선언 이행을 분명히 했다.

반면 정부는 10·4 선언뿐만 아니라 그간 남북 간 합의가 모두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그간의 합의엔 사실상 북한의 비핵화를 약속한 ‘비핵화 공동선언’도 있고, 비핵화를 어떻게 해 나갈지를 구체적으로 기술한 ‘9·19 공동성명’(2005년)도 있다. 10·4 선언엔 남북 핵 문제가 다뤄지지 않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기존 합의를 같이 존중하자’고 강조하는 배경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시에 비핵화 역시 약속대로 이행하라는 압박이 깔려 있는 셈이다.

10·4 선언을 둘러싼 외교전이 올 9월 유엔총회 등 국제 무대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의 입장이 편하지만은 않다. 당장 일부에선 ‘1970년대식 냉전 외교의 재현’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 남북 간 경쟁은 오히려 북한을 경쟁 상대로 격상시켜 주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1일 유엔총회는 ‘10·4 선언을 환영·지지하고 이의 충실한 이행을 권고하며 남북 간 대화·화해에 대한 회원국들의 지원을 요청한다’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바 있다. 당시 이 결의안은 노무현 정부와 북한이 공동 발의한 것이었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결의 자체가 살아 있는 상황이라 현 정부로선 이를 보완·수정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채병건·권호 기자

◇10·4 남북정상선언=지난해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만든 결과물이다. 모두 8개 항 . ‘6·15 공동선언의 적극 구현’(1항), ‘남북 간 상호 존중과 신뢰로의 전환’(2항), ‘서해 평화수역 논의’(3항), ‘3자 또는 4자 정상의 종전선언 추진’(4항), ‘남북 경협 확대’(5항),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6항), ‘이산가족 상시 상봉’(7항), ‘국제무대서 협력 강화’(8항) 등이다. 순서에서 보이듯 10·4 선언은 첫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인 6·15 공동선언에서 출발했다. 10·4 선언에 대한 논란은 4항의 종전선언에서 불거졌다. 이 조항을 놓고 당시 백종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은 “평화협정을 개시하는 선언”이라고 강조한 반면 미국 측은 “이보다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여 논란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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