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완규 작가 “CSI 같은 미드 시스템 도입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최완규 작가님 이름이 있어서 이 드라마를 보게 됐습니다.”

SBS 드라마 ‘식객’ (극본 박우정, 연출 최종수)의 시청자 게시판에 오른 글이다. 최완규? 2006년 시청률 50%을 넘어선 ‘주몽’의 작가다.

‘종합병원’ ‘허준’ ‘상도’ ‘올인’ 등 히트작 제조기로 불린다. 그는 ‘식객’의 대본을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값을 믿고 드라마를 본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는 ‘식객’에 크리에이터로 참여하고 있다.

아직 생소한 용어인 크리에이터는 미국 드라마(미드) 시스템에서 따왔다. 드라마 전체의 방향을 잡고, 캐릭터와 줄거리가 들쭉날쭉하지 않도록 ‘품질관리’를 하는 사람이다. 적게는 십 수 명, 많게는 수십 명의 작가를 거느리고 일한다.

최씨는 올 하반기 방영될 ‘종합병원2’와 강제규 감독이 연출하는 첩보액션대작 ‘아이리스’에서도 크리에이터를 맡았다. 2005년 30여 명의 작가와 함께 세운 회사 에이스토리가 기반이다. 서울 여의도 집필실에서 그를 만났다.

-‘식객’에서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박우정 작가와 스토리를 상의한 후 박 작가가 쓴 대본을 보면서 문제점을 고쳐나간다. 수정·감수자로 보면 된다. ‘미드’의 크리에이터와 다소 거리가 있다.”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나.

“원작이 뛰어날수록 드라마로 만들기가 까다롭다. 만화 ‘식객’은 여러 에피소드가 묶인 형식이다. 이것을 연속극 형태로 만들어야 하니 각색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손질한 대목을 밝혀 달라.

“성찬(김래원)이 민우(원기준)의 계략으로 대령숙수(최불암)로부터 받은 칼을 잃어버린 에피소드다. 거진 한 회 분량이었다. 길이를 줄이고 톤도 조절했다. 대대로 내려오는 훌륭한 칼이고, 요리사에게 칼이 목숨처럼 중요하다 해도 이를 너무 강조하면 요즘 젊은이들 감성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크리에이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는.

“‘종합병원2’와 ‘아이리스’부터다. 둘 다 전문직 드라마다. 이런 드라마야말로 미드식 시스템이 절실하다. ‘에어시티’를 포함해 최근 전문직 드라마를 표방한 작품들이 줄줄이 참패했다. 작가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담배 서너 갑 피워가며 쓰는 지금 시스템으로는 당연한 결과다. ‘CSI’ ‘그레이 아나토미’처럼 직업적 재미에서 우러나는 깊은 맛을 절대로 낼 수 없다. ‘아이리스’는 에이스토리 작가 2명이 2년간 준비했다. 최근 2명이 더 합류했다. 미드 ‘24’를 염두에 뒀다.”

-14년 전 ‘종합병원’을 쓸 때부터 미드 시스템을 꿈꿨다고 들었다.

“그때는 보조작가도 없이 나 혼자 썼다. 방영 6개월 후 ‘ER’을 봤다. 우리와 시스템이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종합병원2’는 내가 크리에이터를 하고 집필 작가를 2명 뒀다. 그들이 취재·구성을 마친 뒤 초고를 쓰면 내가 수정한다. 최근 의학드라마 중에선 ‘외과의사 봉달희’가 좋았다. 의학적 상황과 인간적 갈등의 균형이 훌륭했다. ‘종합병원2’에서도 ‘이야기+전문성’의 황금비율을 구현하고 싶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중앙포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