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개봉앞두고 시사회-광주의 비극 시적이미지로 영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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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꽃잎』이 4월5일 개봉을 앞두고 15일 오후 서울 단성사에서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꽃잎』은후반작업 도중 세계 배급이 확정되는등 국내외의 지대한 관심속에제작됐다.5백여명의 관계자가 몰린 이날 시사회 엔 이례적으로 몇몇 외신기자들까지 참석,영어 자막도 없는 작품을 끝까지 지켜보는 낯선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각양각색으로 흩어졌다.『역사적 상처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란 찬사부터 『광주를 다뤘다는 선언적 의미를 빼면 평균적인 국산영화』라는 혹평까지 나왔다.특이했던 점은 시사회 분 위기가 극도로 엄숙했다는 것.몇몇 웃기는 장면이 나왔지만 관객들은 침묵했다.장선우 감독은 『소재가 주는 무거움을 덜기 위해 의도적으로웃기려 했고 적어도 몇번은 웃을줄 알았다』며 뜻밖이라는 반응을보였다. 웃음을 끌어내려 했던 감독과 웃지 않은 관객.이 두 어긋난 소통주체의 의도와 태도를 이해하는 일은 왜 『꽃잎』에 그토록 다양한 평가가 쏟아지는가를 이해하는 입구가 될듯 싶다.
원작소설인 최윤의 『저기 소리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는 광주민주화운동중 어머니를 잃은 한 미친 소녀를 통해 광주가 제3자에게조차 무형의 폭력을 가했다는 점을 상기시킨 점이 비평적 평가를 받았다.
『꽃잎』은 이런 원작의 의도를 고스란히 영상으로 끌어안으려 한 흔적이 역력하다.성과도 있다.무엇보다 말로 광주의 비극을 설명하지 않고 충격적 영상을 통해 보여준 점을 꼽을 만하다.
해외영화제를 의식한 듯 제3자인 인부들의 입을 통해 광주의 참상을 설명하긴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 흔한 피해자의 고통에 찬 육성도,가해자의 고뇌도 보이지 않는다.
광주의 비극은 거의 말이 없는 미친 소녀(이정현)의 기억을 통해 시적 이미지로 잔잔하게 제시된다.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으로 기록된 광주의 한을 한번 체로 걸러내고 폭넓은 영화적 지평을 만들고 싶었다는 얘기다.그러나 이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광주란 블랙홀에 빨려든 인상이다.영화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소녀와 광주다.이 공룡앞에 다른 인물들은 난쟁이처럼 왜소해진다. 감독이 광주를 다양하게 해석하기 위해 인간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부여했던 인부 장씨(문성근)는 그 격정적인 연기에도 불구하고 공룡의 그늘에 가려버린다.장감독 특유의 유머나 냉소도 공룡의 울부짖음에 덮여 관객에겐 들리지 않는다 .
한마디로 「역사」가 「서사」를 덮고,꽃잎은 「저기」가 아니고「여기」서 진다.그래서 잘 짜인 형식안에 부담스러운 역사적 공룡을 길들여 놓은 영화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잎』엔 이런 시각에서 시 원한 평가를 내릴 수 없는 유보조항이 있다.제작사 미라신 코리아의 기획실장김수진씨는 『현재로선 아무리 광주의 역사적 무게를 줄여 놓아도관객이 부담을 안고 보기 때문에 무거울 수밖에 없다』면서 『칸영화제 관계자나 해외 배급사의 담 당자로부터는 격찬을 들었다』고 말한다.
역사에 눌렸다는 시각이 체험자들의 과민함 때문일 수도 있는 만큼 해외에서의 관심은 소재 자체가 갖는 프리미엄 덕이라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쨌거나 『꽃잎』을 계기로 확인된 것은 광주는 여전히 서사로재구성하기에 아직 부담스러운 소재란 점이다.
역사의 무게와 맞설 수 있는 장인적 용기와 새로운 접근방법이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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