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코노미>GNP신화의 겉과 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물가지수와 「장바구니 물가」간의 괴리에는 우리 국민들도 웬만큼 이력이 나 있다.경제지표는 추세를 나타낸 것이지 경제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19세기 영국의 작가 존 러스킨은 『국민경제는 부(富.wealth)와 해악(illth)을 동시에 생산한다』고 말했다.「illth」는 「wealth」의 반대말로 그가 만들어 낸 것이다.경제학자들을 머쓱케 하는 명언이다.경제적 번영과 삶의 질(質),이 둘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시사다.
국부(國富)의 척도인 국민총생산(GNP) 개념은 1934년 미국의 노벨상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처음 만들었다.상품 및 서비스 총산출량을 금액으로 환산한 것이다.생산된 부만 집계하고 해악은 계산에 넣지 않는다.뺄셈은 없고 덧셈 만 있는 계산기 같다.
한정된 자원을 아끼지 않고 마구 파먹는 동안 GNP는 계속 올라간다.수돗물이 오염돼 생수가 많이 팔릴수록 GNP는 상승한다.배기가스로 대기가 오염되고 교통체증으로 10~20분 거리가한두 시간 걸려도 자동차가 늘어난 만큼 GNP는 올라간다.범죄증가로 경찰관수와 범죄예방장치가 늘고,이혼으로 딴 살림이 늘어나면 GNP는 상승한다.어린애와 노인들을 집에서 돌보지 않고 탁아소나 탁노소에 맡겨 놓고는 자녀들이 걱정돼 너도나도 휴대폰을 사 줄 경우 GNP는 올라간다.
이런 경우 성장은 「사회적 퇴락」의 다른 이름이다.
무리해서 자동차와 TV.냉장고를 큰 것으로 바꾸고 너도나도 에어컨을 들여 놓으면 GNP는 단기적으로 점프한다.쿠즈네츠 자신도 62년 『성장의 양과 질,그 열매와 대가,단기적인 것과 장기적인 것간의 구분을 염두에 두라』는 경고를 남 겼다.그럼에도 GNP 집계방식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폴 새뮤얼슨의『경제원론』은 「경제학은 계측가능한 개념에 초점을 둔다」고 지금도 강조한다.계량화할 수 없는 것은 분석의 대상이 안된다는 뜻이다. 미국경제는 지난 4년간 연평균 2.7% 성장했다.실업률이 7.5%에서 5.5%로 낮아지고 일자리는 8백여만개가 창출됐다.연간 인플레는 2.7%로 안정되고 투자율과 기업이윤은 계속 상승세다.그럼에도 살기가 나아졌다는 국민은 16%에 불과하다.급여가 적은 일자리를 하루 두번씩 나가 뛰는 고된 삶을 GNP는 모른다.뉴 이코노미의 챔피언 기업들이 연간 생산하는 부는 GM이나 포드.듀폰.코닥 등 전통적인 제조업 거인집단을 능가한다.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 두 기업의 종 업원은 4만8천명으로 포드(18만명)의 27% 밖에 안된다.
불균형의 확대를 직감하지만 GNP는 이를 구분하지 않는다.기술혁신이 가져오는 삶의 질 향상도 반영이 안된다.컴퓨터 워크스테이션은 왕년에 자동차 한대 값이었다.지금은 자동차의 10%값으로 같은 성능을 낸다.GNP가 경제정책지표로 더 이상 적합치않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된다.
한국은 아직은 몸집이 계속 커지고 있는 성장경제다.성년에 이른 뒤의 장기적 성숙이 문제다.높은 성장률에 자만하는 것은 금물이다.GNP신화(神話)에 바야흐로 「신(神)들의 황혼」이 오고 있다.
〈본사 칼럼니스트〉변상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