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펀드 담보대출 받았다가 ‘샌드위치 빚’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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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처럼 주식 실물이나 주식형 펀드에 가입한 자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던 이들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주가 하락으로 투자 원금에서 손실이 생기고, 시중금리가 오르면서 대출금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6월 말 증권사의 주식·펀드 대출액은 6조3521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5%(8500억원) 늘었다. 은행의 펀드 담보대출은 증권사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3개 은행(국민·신한·우리)의 6월 말 펀드 담보 대출은 3775억원으로 6개월 새 46%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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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주식·펀드 대출이 크게 는 것은 지난해와 올 초 증시 활황기를 틈타 은행과 증권사가 대출 마케팅 공세를 펼친 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펀드 담보대출에 소극적이었던 은행들은 지난해 11월 일제히 유사 상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뒤 고유가와 세계 경제 침체의 영향으로 주가가 약세를 보이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주식·펀드의 담보가치가 하락하면서 이런 대출의 부실화도 우려되고 있다. 또 대출받은 고객들이 대출금을 갚거나 담보로 잡힌 주식·펀드를 강제로 팔아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금융회사는 주가가 하락해 담보인정비율에 미달되면 주식을 강제로 판다”며 “이 경우 주식을 하한가로 내놓기 때문에 종가보다 싸게 팔릴 수 있어 투자자 입장에선 손해”라고 말했다. 담보인정비율은 주식이나 펀드 평가액을 대출금으로 나눈 값으로 통상 14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예컨대 주식 평가액이 2000만원일 때 1000만원을 빌렸는데, 그 뒤 주가가 떨어져 평가액이 1300만원(130%)이 되면 금융회사는 부족한 10%(100만원)만큼의 주식을 강제로 팔게 된다.

실제로 올 초 주식을 담보로 2000만원을 빌렸던 박지호(45)씨는 최근 주가 하락으로 담보인정비율을 맞추지 못하자 증권사가 500만원 상당의 주식을 당일 종가보다 7% 낮은 가격에 팔았다.

이 같은 사례를 방지하고자 금융회사들은 펀드 담보대출에 대한 위험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수익률이 많이 떨어진 해외펀드는 평가액 대비 대출 비율을 현행 50%에서 40%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은 담보대출 비율을 채권형 펀드는 평가액의 80%, 주식형 펀드는 50%를 일괄 적용하다가 지난달부터 펀드별 특성에 따라 대출 비율을 30~90%로 차등 적용하고 있다.

이자가 갈수록 불어나고 있는 것도 대출자들에겐 부담이다. 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고 있는 양도성예금증서(CD) 등 시중금리의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5.37%에서 한동안 움직임이 없었던 CD 금리는 이달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22일 5.59%를 기록했다.

특히 담보대출보다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한 이들의 고통은 훨씬 심하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박성호(41)씨는 3월 중순께 은행에서 신용대출로 3000만원을 빌려 2000만원으로 주식형 펀드를 샀고, 1000만원은 생활자금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주식형 펀드는 이미 10%가량 손실이 났다. 게다가 금리가 오르면서 매달 갚는 이자는 4월의 18만원에서 이달엔 20만원으로 불어났다.

국민은행 개인여신부 고광배 팀장은 “주가는 떨어지고 금리는 오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며 “특히 펀드 담보 대출은 주가에 따라 평가액이 급격히 달라지면 펀드의 일부가 강제 환매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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