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150년전 천재 김정희와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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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추사에 미치다  
이상국 지음, 푸른역사, 384쪽, 1만5000원

21세기에 추사 김정희(1786~1856)를 논하는 건 어쩌면 고리타분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추사는 시대를 넘어서는 지적 깊이와 인간적 면모를 지닌, 매력적인 천재다. 지은이는 어느 날 갑자기 “입덧처럼 추사와 뜨겁게 연애”하게 됐다고 했다. 1997년 여름이었다. ‘조선후기 국보전’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세한도’와 마주쳤다. 예찬의 글들을 숱하게 봐왔기에 ‘뭐가 그렇게 좋기에?’라는 삐딱한 마음으로 찾아갔던 전시장. 그러나 그 그림 앞에서 그는 30분을 마냥 서있었다.

“나는 저 장면을 떠올리고는 늘 몸서리친다. 한증막 같은 배소를 삼엄하게 감싸는 절대 고독의 추위. ‘세한도’는 설한에 둘러싸인 진경의 겨울이 아니라, 빈 섬에 갇힌 정신의 유폐에 관한 엄혹한 리포트다.”

인기척도 잘 느껴지지 않는 화면 속에 나무 네 그루와 집 한 채. 황량한 풍경을 쓱쓱 붓질하고 있는 사람의 천진하고 무심한 표정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자기 탐닉에 몰입해 있는 듯한 붓끝의 동세(動勢)는 결국 그를 추사에 푹 빠지게 했다. 이때가 가슴이 쿵쾅거리던 연애의 시작이다. 150년 전의 천재와 묘하고 짜릿한 사랑에 빠진 순간이었다. 사실 보통 사람들이 추사를 떠올린다면 똑똑하고 단정하며 조금은 도도한 양반의 전형적 모습일 수도 있겠다. 오만함을 스스로 경계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사실 추사도 꽤 ‘인간적’인 남자였다. 평양기생 죽향과 스캔들이 나기도 했고, 아내의 고독과 상심을 배려하는 마음을 편지에 띄워 보내기도 했다. 집안의 대를 이으려 친척의 아들을 양자로 삼았다. 지은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추사의 삶과 예술을 해석했다. 재치와 해학도 묻어나 150년 전 화석 같은 추사를 다시 생생한 숨결로 느낄 수 있다. 예산의 추사 고택도 자주 찾아가 묘 앞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시오노 나나미에게 다가왔던 마키아벨리 같이 내게 추사는 다가왔다. 내가 그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세한도’에 붙들렸다”고 지은이는 말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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