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 40년 역사-年거래대금142조 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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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자본시장의 꽃」으로 표현되는 증권시장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사람으로 치면 불혹(不惑)의 나이에 접어든 것이다.
56년 3월3일 증권거래소가 처음 설립될 때만 해도 국내증시는 「증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당시거래소에 상장된 주식은 12개사 13개 종목이 전부였고 연간 거래대금은 3억9천만원에 불과했다.그러던 증권시 장이 지금은 상장회사수 7백21개,연간 거래대금규모 1백42조원의 규모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상장주식의 시가총액은 국내 총생산(GDP)의 절반이 넘는 1백41조원에 달하고 29조원이 넘는 자금을 기업들에 제공해주고 있다.
증권거래소가 설립된 직후에는 거래원들의 인식부족과 제도의 미비등으로 각종 파동으로 바람잘 날이 없었다.
일부 증권업자들의 매집으로 매매거래대금의 결제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국채가격이 올랐던 「1.16국채파동」(58년)이나 대한증권거래소의 주식에 대한 투기성 매매가 결제불능 사태로까지 이어진 「5월 증시파동」(62년)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62년 증시파동의 경우에는 거래소가 73일간 문을 닫는 치욕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68년에 정부가 「자본시장육성법」을 만들면서 증시체제를 정비해나가기 시작한다.이후 증권파동을 초래했던 청산거래의폐지,기업들의 사채(私債)를 동결한 72년의 8.3조치,기업공개촉진법 제정등 잇따른 정부의 자본시장 육성정책 에 힘입어 70년대 중반에는 한해에 50~60개의 기업이 새로 공개되고 주식투자인구가 급증하는 증시활황기를 맞게 된다.
78년에는 주식거래대금만 1조7천억원에 이르렀고 60년 1만명에 불과했던 주식투자인구도 96만명으로 늘어났다.또 새로 공급되는 주식을 사기 위해 통금이 해제되는 새벽 4시부터 인근 여관에서 잠을 잔 투자자들이 증권사 앞에서 장사진 을 친 것도바로 이때다.
3저(低)호황과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86년 이후 국내 증시는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는 활황을 맞게 된다.상장회사수나 시가총액.거래대금등에 있어 국내증시는 대만증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했다.그결과 85년 세 계 35개 증권거래소중 29위(시가총액기준)에 머물렀던 국내증시는 89년에는 세계 15위로 껑충 뛰어오르기도 했다.
이무렵 정부는 한국은행의 특융이라는 전례없는 방식을 도입,투신사에 주식을 매입토록한 소위 「12.12조치」(89년)를 단행,시장관계자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90년대에 들어서 국내경기의 불황과 함께 침체국면에 돌입한 국내증시는 대외개방을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92년 외국인이 직접 국내주식을 살수있는 길을 열어준 것을 계기로 외국인 자금이증시로 유입됐고 기관투자가들에 의해 장이 주도되 는 「기관화현상」이 급진전됐다.
동시에 국내기업들의 해외주식시장 진출도 활발해 90년 삼성물산이 룩셈부르크에 주식예탁증서(DR)를 상장한 것을 비롯,94년에는 포항제철과 한국전력의 DR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된 국내증시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가입과 함께 국내증시의 개방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5월부터 열릴 예정인 선물시장은 국내투자자들에게 새로운 투자수단으로 다가서고 있다.
증권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기업.증권당국이 이같은 변화를 어떻게 수용해 나가느냐가 앞으로 국내증시 모습을 결정짓는 관건이될 것이다.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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