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美언론과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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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은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뒤 미국은 지구상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등장했고 부시 대통령은 바로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군의 총사령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 정치판을 보노라면 미국에는 대통령보다 더 힘이 센 기관이 최소한 두개쯤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나는 의회고, 다른 하나는 언론이다.

평상시 이 두 조직은 대통령에게 최대의 예우를 지킨다. 하지만 일단 "이게 아니다" 싶으면 가차없다. 미 의회의 9.11 청문회가 시작된 이후 미 언론은 부시 대통령에 대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12일 '침묵하는 대통령'이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사설은 "의회 청문회에서 많은 사람이 어떻게 했으면 9.11을 피할 수 있었을까 자책하는 것을 들었다"면서 "단지 대통령만이 그 같은 자기 검증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또 "중앙정보국(CIA)이나 연방수사국(FBI)에만 책임을 돌릴 게 아니라 부시의 백악관 자체가 문제의 일부가 아닌지 자문할 때"라면서 "과거 어떤 대통령도 중요한 정보보고를 한 페이지 정도만 하라고 제한하지도, 정치 고문들을 백악관에 그렇게 많이 포진하지도, 정책 결정자들이 대통령 집무실에 접근하는 걸 그토록 어렵게 만들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국민이 신뢰를 보낸 건 국가를 제대로 운영하라는 의미였지 재선에 이용하라는 게 아니었다"는 등의 표현에는 서슬이 시퍼렇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사설을 통해 이라크전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하지만 일단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국론이 분열되지 않도록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더 이상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런 신중함을 보인 뉴욕 타임스이기에 이 신문의 비판은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백악관은 뉴욕 타임스의 사설이 나간 직후 당초의 입장을 바꿔 "대통령이 13일 저녁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발표했다.

미 언론과 대통령의 금도(襟度)가 부러웠다.

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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