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 때 끌려간 조선도공 한글 망향시 새긴 찻잔 400여년 만에 고국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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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미술 수집가인 고(故) 후지이 다카아키(藤井孝昭)의 아내와 아들이 최근 교토국립박물관에서 한국에 기증할 하기야키 찻잔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운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갔던 조선 도공이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담은 한글 시(詩)를 표면에 새긴 찻잔이 4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에도(江戶)시대에 제작된 이 녹차 잔이 바다를 건너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될 예정이라고 아사히(朝日)신문 인터넷판이 14일 보도했다. 연갈색의 이 찻잔은 직경 약 13cm, 높이 약 11cm 크기로 일본의 고미술 수집가인 후지이 다카아키(藤井孝昭)가 소유하던 것이다. 1983년 숨진 후지이는 생전 교토(京都) 국립박물관에 이 찻잔을 기탁했다. 이번 기증은 후지이의 유족인 부인 야에(八重·86)와 차남 게이(慶·58)의 결심으로 이뤄졌다. 야에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도자기를 만든 도공이 하늘나라에서 가장 기뻐할 것 같다”며 “일본에선 창고에만 보관되지만 한국으로서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 한국 에 기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야에는 “남편의 수집품 중 고향을 그리워하는 도공의 절절한 마음을 담고 있어 유독 애착이 갔던 작품”이라고 했다.

하기야키(萩燒) 중 한글이 적힌 작품은 일본 내에서도 그 예가 없다. 하기야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 침략 당시 출병했던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가 1592~1598년 조선에서 붙잡아온 도공들이 지금의 야마구치(山口)현 하기(萩)시에 정착해 만든 도자기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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