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대중문화현장>파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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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프랑스는 영화를 「제7의 예술」로 자리매김하고 영화를 탄생시킨 종주국임을 자랑한다.
미국의 할리우드영화가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지만 프랑스 영화만은 다른 나라와 달리 여전히 고유 영역을 지켜나가고 있다. 그래서 적어도 영화애호가라고 자처한다면 파리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프랑스 영화박물관)다.프랑스인들의 영화에 대한 애착과 이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숨쉬고 있는곳이기 때문이다.
에펠탑이 내려다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 옆 샤이요궁(宮)안에 있는 시네마테크.프랑스영화 1백년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수 있는 영화관.박물관및 도서관을 한곳에 모은 복합시설물이다.
박물관에서는 영화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고 극장에서는 일반 상업극장에선 좀처럼 접할 수 없는 감독 또는 배우와 만날수 있다.또 도서관에서는 각종 영화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있으며 권위있는 영화전문가가 강연하는 영화세미나를 통해 영화의 작품세계에 흠뻑 빠져볼 수도 있다.
이곳에서 미국식 할리우드영화의 촬영장처럼 거대하고 화려한 최첨단 시설물을 기대하면 약간 실망할 수 있다.할리우드영화와 차별화되는 프랑스영화처럼 그저 담백하고 소박한 분위기 속에서 영화의 역사와 참맛을 음미하는 마당일 뿐이다.
시네마테크는 1936년 프랑스의 한 영화광 앙리 랑글루아(1914~77)가 사재를 털어 무성영화를 수집한뒤 파리 시내 작은 사무실에서 영화동호인들을 위해 상영하면서 시작됐다.이 소규모 상영실은 이후 『마지막 지하철』(80년작)등으 로 유명한 프랑스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1932~84)등이 영화에 대한 열정을 키워 누벨바그운동을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공로로 62년 당시 문화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가 현재의 공간을 마련해줬고 오늘날 도서관과 박물관 등까지 갖춰 세계에서유일한 영화의 전당이 됐다.
우선 영화 상영관에 들어가보자.복도를 따라 광고포스터와 촬영사진 등으로 꾸민 특별전시회는 상영중인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뿐 아니라 이미 본 영화라면 잊혀진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1층과 2층에 모두 3백석을 갖춘 작은 영화관에는 그다지 관객이 많지않지만 모두들 영화라면 만사를 제쳐놓는 광(狂)들이다.
이 영화관은 흥행성적과 관계없이 작품성이 뛰어난 감독이나 국가의 영화를 선정해 보통 한달여기간을 잡고 특별상영회 형식으로집중 조명,희귀한 영화를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올해는 지난 1월초부터 한달동안 「인도매니어」란 주제로 인도에서 제작된 영화 52편을 상영,제3세계 영화에 심취해있는 영화애호가들의 갈증을 풀어줬다.
현재는 3월1일까지 이탈리아의 거장 알베르토 라투아다(1914~ )감독을 위한 회고전을 열고 있다.라투아다는 50,60년대 이탈리아 영화계에서 신현실주의를 개척하며 화려한 의상과 에로티시즘을 과감히 도입한 거목으로 꼽히는 인물.
43년 만든 처녀작 『이상주의자 지아코모』로부터 85년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등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그의 대표작 37편을 상영하고 있다.
3월부터는 프랑스 미남배우 알랭 들롱의 회고전이 준비돼 있어70년말~80년초 프랑스 갱영화에서 장 가뱅.리노 벤추라 등과함께 전성기를 누리던 그의 모습을 되찾게 됐다.
다음으로 영화관과 함께 찾아봐야 할 곳이 바로 옆에 나란히 붙어있는 영화박물관.
72년 역시 랑글루아가 35년부터 자신이 소장해온 각종 영화관련 기구들을 모아 문을 연 이 박물관은 프랑스에만 있는 독특한 것으로 영화의 산교육장으로 쓰이고 있다.흑백 무성영화때 사용했던 촬영기와 필름이 눈에 들어오고 의상.장식 품등 소도구,빛바랜 벽보광고,당시의 촬영장 사진,시나리오 원본등 전시품은 영화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박물관은 현재 1만7천개의 미니어처(트릭촬영에 사용하는 모형)와 장식품및 데생,1만5천개의 시나리오 원본,3만개의 영화광고,4천점의 의상을 소장하고 있다.
파트리스 쉐로 감독,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렌 마고』(여왕 마고)에서 사용됐던 의상과 소도구들이 모두 이 박물관에 기증돼조만간 한 공간을 차지한다.
부설 도서관은 2만5천개의 저서와 1천5백개의 잡지들을 진열하고 있으며 사진자료실은 영화제작자와 배우 등의 인물사진 2백만점을 갖고 있다.또 영화 2만3천편 분량의 필름도 소장하고 있으며 매년 전세계로부터 1백50편씩의 신작 필름 을 구입 또는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다.
매주 열리는 영화세미나는 영화이론의 토론장으로 한몫한다.매번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일반인을 상대로 영상미학및 감독의 작품세계에 관한 토론과 강연이 주가 되고 있다.한 예로 3월부터 5월중에는 「스필버그식 경향과 80~90년대 미국 영화의 정체성」「장 뤼크 고다르」등 9건의 세미나가 개최된다.
시네마테크는 영화 상영과 필름 수집및 관련 자료 보관 등을 목적으로 박물관 수입금및 기부금등 연간 3천6백만프랑(약57억원)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네마테크의 문화담당국장 알랭 마르샹은 『시네마테크는 특정 이념이나 감독.국수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며 『전세계인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영화를 보존하고 이해시키는 교육장으로 활용되는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영화관에서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오후 회고전의 성격에따라 한두편씩 상영되고 있다.프랑스 영화는 원어 그대로 상영되고 외국 영화는 원어 또는 프랑스어 자막을 붙이며 입장료는 28프랑(4천4백원).
박물관은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문을 열며 하루 두세차례 정해진 시간에 안내인을 따라 단체관람만 가능하다.또 샤이요궁에서 열리는 세미나는 매주 화요일 오후6시30분부터 1시간30분간 계속되며 이곳 입장료도 28프랑.
참가자격엔 제한 이 없다.
▶주소:7,Avenue Albert-de-Mun,75116,Paris.지하철(메트로) 이에나 또는 트로카데로역에서 내려 인근에 있는 샤이요궁을 찾으면 된다.
글.사진=고대훈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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