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주식↓금리 ↑… 가계 덮친 ‘자산디플레’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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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사업을 하는 유모(50)씨는 요즘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2년 전 14억5000만원에 구입한 서울 개포동 재건축아파트 72㎡형을 며칠 전 12억5000만원에 내놨다. 집을 사면서 대출받은 2억원의 이자가 매월 100만원을 넘어 부담이었는데, 올 들어 대출금리가 올라가면서 더 버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씨는 지난해 말 가입한 펀드의 손실도 커져 지금은 환매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1억5000만원을 넣어둔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은 현재 마이너스 28%.

‘자산 디플레(가격 하락)’ 공포가 덮쳐 오고 있다. 집값이 떨어지고, 주가가 하락하는 가운데 시중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주식투자를 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이 지갑을 닫고 소비를 줄이고 있어 가뜩이나 침체된 내수가 더 얼어붙고 있다.

◇자산 디플레 오나=강남권 재건축을 비롯한 고가 아파트 가격이 먼저 떨어졌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148㎡형은 연초 24억원에서 20억원으로 내렸다. 잠원동 롯데캐슬1차 138㎡형은 연초 14억원에 거래됐으나 요즘은 11억원에 나온 급매물도 잘 팔리지 않는다.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개 구의 아파트값은 최근 석 달 새 1.65% 하락했다.

집값 하락은 수도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올 상반기 과천 집값은 평균 7% 떨어졌고, 용인도 1.6% 내렸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집값 하락이 고유가 때문에 빨라진 측면이 있다”면서 “하반기 이후엔 집값 하락세가 강북권이나 수도권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가도 많이 내렸다. 10일 코스피지수는 1537.43을 기록해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5월 16일(1888.88)에 비해 23% 떨어졌다.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도 좋지 않다. 올 상반기 설정액 100억원 이상 국내 주식형 펀드 337개가 모두 원금 밑으로 떨어졌다. 생활비를 잠시 넣어둔 주부들이나 결혼자금을 투자한 직장인, 빚을 내 펀드에 가입한 사람들이 어려움에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다.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는 4월 이후 0.25%포인트 상승했다. 주택담보대출은 꾸준히 늘어 6월 말 현재 229조원에 달한다. 게다가 가계저축률은 2004년 5.7%에서 지난해 2.3%까지 떨어졌다. 급할 때 찾아 쓸 비상금도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다.

◇소비 진작책 찾아야=자산 디플레는 장기 불황이란 악몽을 부른다. 자산가격이 하락하면 ‘소비 부진→경기 위축→소득 감소→소비 부진’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의 여파로 일본이 겪은 10년 경기침체가 그런 경우다.

이미 소비 위축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소비재 판매는 전월에 비해 0.6% 줄었다. 4월에 이어 두 달 연속 감소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가가 1% 하락하면 민간 소비는 약 0.03%포인트 감소한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이 자산 디플레는 아니라고 진단하면서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경기 하강과 맞물려 있어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자산 디플레 국면은 아니지만 대출로 집을 샀다가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임경묵 연구위원은 “2차 오일쇼크를 겪은 80년과 외환위기 직후인 98년에 실질 국민소득(GNI)이 감소했다”며 “올해 GNI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 위원은 “세금 환급 등 소비 진작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렬·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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