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 살림 쪼들려 ‘불협화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KBS교향악단의 제618회 정기연주회가 열린 9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로비. 오케스트라 단원 두 명이 연주복을 입은 채 청중 출입문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이날 연주할 예정이었던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을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으로 바꾼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KBS교향악단 단원 일동’의 명의로 된 이 글은 “125명이던 단원이 지금은 90명으로 줄어 연간 90여회의 연주를 힘겹게 하고 있다”며 “30여 명의 객원 연주자를 동원해야 하는 실정에서 질 높은 연주는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곡을 변경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객원 연주자 없이 정단원 만으로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연주곡을 바꿨다는 것이다.

2004년 이후 비어있는 상임지휘자의 자리도 문제가 됐다. 단원들은 일주일 전 교향악단 운영진과 만나 “상임지휘자와 단원을 시급히 선발하라”고 요구했다. 운영진은 이에 대해 “예산이 적어 불가능하다”고 맞섰다. 현재 KBS교향악단의 연간 예산은 80억원 수준. KBS 측은 상임지휘자와 단원 30여명을 충원할 경우 20억원 가까운 예산이 더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교향악단 관계자는 “KBS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교향악단의 예산을 크게 늘리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에따라 앞으로 열릴 공연에서도 사측과 단원들의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달 23·24일에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보다 규모가 더 크고 연주가 까다로운 말러의 교향곡 9번이 연주곡으로 예정돼있다.

이 곡 또한 변경될 가능성이 크다. 오케스트라 운영진은 객원 지휘자 유베르트 수당에게 “대체할만한 곡목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를 해놓은 상태다. 앞으로 2년동안 계획돼 있는 연주회가 열릴 때마다 이같은 마찰이 예상된다.

KBS교향악단은 1956년 창단된 이래 국내 제1의 오케스트라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상임지휘자 드미트리 키타엔코가 2004년 임기를 마친 후 현재까지 수장이 없는 상태다. 또 2005년 법인화 논의가 결론을 내지 못하면서 예산·인력 등에 힘을 싣지 못하고 있다. 지휘자 정명훈이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하면서 상대적으로 팬들의 외면을 받았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