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 단점은 건망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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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사진)의 별명은 '교리의 수호자'다. 교리에 엄격한 정통 보수파란 뜻이다. 그러나 추기경 시절 그를 알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원리원칙주의자일 것 같지만 실은 친근감 있고 인간미가 느껴지는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교황의 인간적인 면모가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교황의 형 게오르크 라칭거(81) 신부는 최근 독일 일간지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동생의 유일한 단점은 건망증"이라고 말했다. "건망증이 심해 열쇠.시계.서류 등을 어디에 놓아뒀는지 자주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NYT)는 24일 주변 사람들을 인용, "베네딕토 16세는 수줍음을 잘 타고, 질서정연한 것을 좋아하며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도했다.

교황은 여가가 나면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피아노 연주에도 열심이다. 교황의 20년 친구인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은 "지인들은 교황이 관저로 피아노를 가져갈지 몹시 궁금해하고 있다"며 "교황이 된 뒤에도 바흐나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걸 듣고 싶다"고 말했다.

NYT는 또 "질서정연함은 베네딕토 16세 시대의 특징이 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신앙교리성 장관이던 교황은 바티칸 외곽에 살다 취임식 전 교황 관저로 이사를 했다. 이삿짐 중 가장 비중이 컸던 것이 어마어마한 양의 장서였다. 교황은 "꽂혀 있던 순서 그대로 관저에 옮겨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

교황이 추기경 시절 자주 찾던 바티칸 근처 식당 주인은 "교황은 높은 지위에도 허세 부리는 일이 전혀 없었다"고 회고했다. 식당 주인은 교황의 유머 감각을 보여주는 일화를 소개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개를 잃어버려서 '독일산 셰퍼드를 보신 분 있습니까'라는 벽보를 식당 안에 붙였다. 그런데 교황이 이를 보더니 "내가 (벽보에 있는 개가) 아냐"라고 말을 한 뒤 자기를 가리키면서 "나는 여기 있어"라고 덧붙였다는 것이다.

그러자 모두 웃음을 터뜨리면서 그의 유머에 놀랐다. 셰퍼드(shepherd)는 개의 종류이지만 영어로는 '목자'라는 뜻이다. 교황은 '독일산 셰퍼드'란 단어를 '독일에서 온 성직자'로 돌려 해석해 농담을 한 것이다. 교황이 독일 출신이기 때문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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