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잃은 후에 얻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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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며칠전 겨울 코트를 한벌 준비하려고 백화점에 갔다.
그런데 아동복 코너에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보니 2만~3만원하는 유아옷을 5천~6천원에 파는 것이었다.신상품이 아닌 재고였지만 나도 사람들 틈에 끼여 이것 저것 뒤적이며 골라 보았다.겨우 한벌을 골라 값을 치르려고 보니 주머니에 있던 지갑이 없었다.아무리 찾아도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소매치기를 당한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갑 속에는 현금 30만원 정도와 백화점카드.BC카드.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등 각종 신분증과 카드가 있었는데 잃어버린 것이다.쇼핑을 나와 여유로웠던 기분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불쾌한 마음뿐이었다.서둘러 카드 분실신고를 하고 돌아서는데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왜 좀더 지갑에 신경쓰지 못했을까,딸 옷을살 계획도 없었는데 아동복 코너에 쓸데없이 왜 갔을까,평소에 무조건 싼 것만 좋아하니까 이런 일이 생겼구나 등 여러 생각이꼬리를 물고 일어나며 모든 행동이 후회스러웠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속상해하고 있는데 남편이 돌아왔다.남편에게 지갑 잃어버린 경위를 열심히 설명하며 속상해하는데 남편이말했다.『우리가 평소에 잃어버리고 사는게 얼마나 많은데 그래.
너무 보이는 것에만 연연해하지마.시간도 잃어버리 고 소중한 마음도 잃어버리고 살잖아.잃어버린 돈을 생각한다고 돌아오는 것도아니고 더 속만 상하니 돈 잃고,마음 상하고 2중으로 잃어버리는거야.』 순간 한대 얻어맞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남편의 이런점이 좋아 결혼하고도 살면서 잊고 살았다.남편이 지갑을 잃어버리고 왔다면 나는 어디서 잃었느냐,칠칠치 못하게 지갑을 잃어버리느냐,30만원이면 우리 식구 한달은 살겠다는등 잔소리했 을 텐데 남편은 아무 핀잔없이 내가 잊고 살던 것을 깨우쳐 주었다.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다시 산 대가를 비싸게 치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대신 오늘의 일을 잊지 않고 96년은 그동안 현실에 얽매여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챙겨가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버려지는 시간에 책도 잃고 자기 계발도 하면서 남편을 처음 사랑했던그때의 마음을 되살리면서….
김현미 인천시 남동구 만수6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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