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년 만의 구조적 위기 중산층 설 곳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

①김병철씨 부인의 칼국수집이 있는 일산 마두역 근처 지하상가. 불황 탓에 빈 가게가 대부분이다. ②오전 9시30분 김씨가 버스를 타고 공인중개사 학원으로 향한다. ③오후 7시까지 학원 강의실에서 공부에 몰두한다. 신인섭 기자

김병철씨의 고백은 1997년 한국사회를 뒤흔든 외환위기에 이어 10년 만에 다시 찾아든 국가적 경제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대표적인 대한민국 중산층의 얘기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김씨는 잘나가는 ‘뱅커(banker)’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인 경북 포항의 동지상고 취업반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68년 조흥은행에 입행했다. 직장생활도 순탄했다. 고과가 좋아 동기 중에서 가장 먼저 차장을 달았다.

1989년 이북5도민이 주축이 된 동화은행이 출범했다. 조흥은행에서 영업 전문가로 소문난 김씨는 연봉의 40%를 더 받고 90년 5월 동화은행 서초남지점 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3년 뒤인 93년 처음으로 지점장으로 승진, 당산지점을 맡았다. 이듬해 연말에는 일산 백마마을에 161.7㎡(49평) 아파트까지 마련했다. 그는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방 3개 아파트에 다섯 식구가 비좁게 살다가 방 4개짜리 아파트에 이사를 오니 대궐에 들어서는 것 같았다”며 “독방을 하나씩 차지하고 좋아하던 두 아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병철씨가 이른 아침 부인과 함께 표고버섯 나물을 준비하고 있다. 김씨 부인의 칼국수집 ‘마두칼국수’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2동 아리오조빌딩 지하 1층 상가(031-904-3546)에 있다. 바지락 칼국수 외에도 보리비빔밥이 일품이다. 신인섭 기자

외환위기 이후 계속된 고통

김씨의 행복은 여기까지였다. 97년 말 터진 외환위기 여파가 은행에도 밀려들었다. 이듬해 정부는 군소은행의 통폐합을 유도했다. 동화은행도 퇴출명단에 올랐다. 직원 2000명 중 신한은행으로 흡수된 대리·과장급 직원 200명을 제외한 1800명은 실업자가 됐다. 당시 신도림 지점장이던 김씨도 은행을 떠나야 했다. 4300만원의 퇴직금이 나왔지만 은행 대출금을 갚고 나니 손에 쥐어진 건 달랑 300만원뿐이었다. 당시 장남은 고1, 차남은 중3. 한창 교육비가 들어가던 시점이었다.

"49평 아파트에서 기사 딸린 차를 타고 은행으로 출퇴근하다가 갑자기 실직자가 됐다고 상상해 보세요. 말로만 듣던 공황상태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더라고요.”
사회에 대한 분노와 자괴감으로 반년 가까이 술로 방황하던 김씨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1억3000만원을 어렵사리 끌어 모아 독서실을 인수했다. 하지만 한 달 수입이 200만원도 채 되질 않았다. 그렇게 1년 반을 보내던 김씨에게 부활의 기회가 찾아왔다. 환경 기자재 관련 벤처기업을 운영하던 손아래 처남이 하수처리 관련 부품의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2000년 1월 판매 자회사를 김씨에게 맡겼다. 김씨도 독서실을 처분한 돈에 조금을 더 보태 1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49평→39평→32평 전세’

천사의 질투였을까. 잘될 것만 같았던 사업은 2001년 11월 부도를 냈다. 빚도 갚고 아이들 교육비도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49평 아파트를 줄여 인근 39평으로 이사했다. 부인 이신휘씨가 칼국수집을 연 게 이때다. 충북대를 졸업하고 결혼 후 첫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여고에서 가정 선생님을 했던 엘리트 부인이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인 것이다. 김씨도 은행 경력을 살려 채권추심회사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했다.

재기를 위해 발버둥치던 김씨에게 다시 불행이 찾아 들었다. 평소 고혈압과 당뇨병 증상이 있어 병원 출입이 잦았던 김씨가 지난해 11월 신체검사 결과 간암을 발견한 것이다. 간의 절반을 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그나마도 다른 조직으로 전이되진 않았다. 한때 1m72㎝ 키에 80㎏이 넘던 체중이 60㎏까지 쑥 내려갔다.
김씨의 자산은 지난 10년간 급속히 줄어들었다. 49평 아파트는 39평을 거쳐 이제는 32평 전세 아파트로 변했다. 백마마을 49평 아파트의 최근 시세는 약 8억원. 하지만 지금은 전세금 1억8000만원이 재산의 전부다. 그나마도 친척 어른에게 빌린 돈 5000만원을 빼면 1억3000만원밖에 안 남는다.

가계부도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다. 10년 전 동화은행 지점장 연봉은 8000만원. 지금으로 치면 1억5000만원가량 된다. 지난달 김씨네 수입은 부인이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14시간 동안 칼국수를 팔아 벌어들이는 월 160만원이 전부다. 연봉 2000만원이 채 안 된다.
 
다시 찾아온 경제 위기

10년 전 동화은행 퇴출과 실직은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경제위기로 인한 불행이었다. 10년이 지난 2008년 김씨의 위기는 형식만 다를 뿐 내용은 그때와 매한가지다. 연일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국제유가·금리·곡물가격 폭등은 김씨는 물론 한국 중산층 대부분의 목을 조여 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경제공약인 ‘7·4·7’은 휴지조각이 됐다. 7% 성장은 고사하고 5%대 소비자물가 상승이 중산층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반드시 지키겠다”던 MB물가는 7.7%나 올랐다. 지난해 이맘때 5.81%였던 시장금리(3년 만기 회사채)는 최근 7%를 넘어섰다. 올해 2월 7.98%였던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이자는 9.05%까지 뛰었다. 김씨를 비롯한 중산층·서민의 지갑은 하루가 다르게 얇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위기는 이제 시작’이란 점이다. 한국은행은 하반기 성장률이 3.9%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물가는 상반기 4.3%에서 하반기 5.2%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골드먼삭스는 지난달 “국제유가가 2010년에는 배럴당 200달러 수준에 달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조차 “유가가 배럴당 170달러까지 치솟으면 성장률이 3%대에 그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내수 침체는 김씨 부부와 같은 소규모 자영업자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힌다. 그나마 여유가 좀 있는 소비층마저 지갑을 닫으면서 직격탄을 맞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서비스업 생산 증가율은 올해 1월 6.3%에서 5월에는 5.9%로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이 31.5%라는 것을 감안할 때 자영업의 붕괴는 곧 중산층의 몰락을 의미한다. 벼랑 끝에 내몰린 김씨 부부의 재기 여부는 곧 우리 경제 회생의 바로미터다.

최준호·이상재 기자 ·양진우 인턴기자 joonho@joongang.co.kr

[중앙SUNDAY]

▶ 위기의 중산층 "퉁퉁 부은 아내 손이 내 벼랑 끝 현실"

▶ 물만 배출되는 '꿈의 자동차' 최소 2억원

▶ 박근혜 총리냐 한승수 유임이냐

▶ 반기문 총장 "한국, 솔직히 창피하다"

▶ 'MB광고 욕쟁이 할머니' "거리서 지랄들을 허니…"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