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인터뷰] ② "고3때 日감독 양자로 가려다 조부반대 무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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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놓쳐버린 기회들

- 81 년 캐나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계약이 무산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었는데요. 일부에서는 연봉에 지나친 욕심을 부렸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연봉이요? 그런 소리들을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사실은 아니었어요. 연봉은 61만 달러에 계약이 되었었죠. 하지만 병역 문제가 걸렸어요. 당신 차범근 선수가 공군에서 병역을 마치고 독일로 갔죠. 그러니 저도 마찬가지로 병역 문제가 걸림돌이 된 거죠. 81년도에 캐나다 수상이 왔을 때, 전두환 대통령이 교민들의 사기를 위해 전향적으로 검토하라는 지시를 했다더군요. 그때 청와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죠. 하지만 결국 병역문제가 걸림돌이 되더군요.”

- 그럼 아마시절 일본 롯데 가네다 감독의 양자로 입적해서 일본 프로로 진출하려던 문제도 역시 같은 이유였나요? 그때는 귀화 아니냐는 식으로 여론이 안 좋았었는데요.

“그때는 아니었어요. 당시 일본에는 외국인 선수 제한이 있었고, 롯데에는 외국인 티오가 꽉 차 있었어요. 그래서 가네다 감독의 양자로 입적하자는 제안이 오간 거죠. 하지만 조부의 반대로 무산되었어요. 완강하셨죠. 아무리 서류상이지만 일본 사람의 양자로 입적하는 게 말이 되냐고요. 저는 그때 고3 이었는데 아무것도 몰랐어요. 욕심도 없었고요. 어른들 사이에서만 이야기가 오간 거죠.”

- 다시 프로 시절로 돌아가보죠. 연봉문제로 구단과 매년 충돌했었죠. 어차피 연봉은 국내 최고였는데, 몸값에 대해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집착할 이유가 있었나요?

“그건 구단의 언론 플레이가 많이 작용 한 겁니다. 스타 선수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선수는 개인입니다. 구단은 힘이 있고요. 특히 그 시절은 말할 것도 없죠. 아무리 스타 선수라도 구단을 이길 수는 없어요. 그 점은 언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구단 이야기를 듣겠어요? 선수 편을 들겠어요? 프로선수가 구단과 몸값을 협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구단에서 처음에는 저하고 협상을 하다가, 나중에 아버지가 오셔서 조율해달라고 부탁을 하고서는 나중에는 아버지가 개입해서 협상이 깨졌다고 흘리는 거죠. 그럼 언론은 그렇게 써요.”

- 대부분 선수들은 나중을 생각해서 구단 프론트에 눈도장을 찍으려고 하잖습니까? 나중에 지도자의 길을 걸을 때를 대비해서요. 그런데 최 감독은 어땠습니까?

“안 했습니다. 왜 그래야 하죠? 그때그때 무리가 되어도 그냥 선수로서 최선을 다했어요. 내게 충실했죠. 나는 게을리 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경기에 나가라면 나가고 던지라면 던졌습니다. 어깨나 몸을 생각했다면 그럴 수 없었죠. 그냥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선수로서 할 일은 그것뿐 입니다. 나중 일은 그때 또 최선을 다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물론 결과적으로는… 어쨌건… 지금은 행복해요. 그럼 됐잖아요.”

(그는 당시 롯데구단에 대해 여전히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제 최동원도 과거의 최동원이 아니었다. 지난날 시속 150km의 광속구처럼 쏟아내던 직설적인 말들이 아제는 완곡한 표현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글=박경철 donodonsu.naver.com,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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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인터뷰-최동원] ③ "'최동원은 아버지가 망쳤다'고 떠돌지만…"

▶[종횡무진인터뷰-최동원] ④ <끝> "부산, 가고 싶지요. 하지만 난 지금 한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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