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칼럼>산소같은 정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4월총선거를 앞두고 마구잡이 영입에 사생결단의 절박한 정국 기류가 흐른다는 비관적 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히려 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낙관적 정치개혁의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해 본다. 그 첫 기대가 이회창(李會昌).박찬종(朴燦鍾)으로 대표되는 새 인물에 대한 여론의 기대와 성공적 수용을 꼽는다.서울지역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한 여론조사 결과는 흥미롭다.과거청산 정국속에서 밤낮 2위에 머무르던 신한국당(가칭)이 단연 1위로 부상했다.신한국당 19.9%,국민회의 16.8%,민주당11.8%,자민련 5.6%,무소속 3.2%로 나타났다(한겨레신문 1월26일자).이는 지난해 같은 조사기관의 13.3%(11월27일),15.5%(12월22일)지지율 에 비하면 눈부신 약진이 아닐 수 없다.
비자금 파동으로 나라가 들끓을 때는 민주당이 20.2%로 단연 앞섰고 전두환(全斗煥)씨 구속 정국에선 국민회의 지지율이 높았다.그렇다면 어떤 변수가 여당 지지층으로 옮겨 왔는가.과거청산의 정략성과 절차상의 비합리성 논란이 시간이 흐르면서 이해됐거나 망각되면서 이회창.박찬종씨의 신한국당 영입,이른바 「이회창 지수」가 장세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는 분석이 확실하다.이회창씨 영입 발표가 있던 날 서울시민 상대 여론조사에선 신한국당 지지율이 29.9%로 국민회의 1 7.5%를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두 정치인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好不好)와 정치적 역량을 묻기에 앞서 두사람의 어떤 요인이 정치 장세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가.이회창하면 「법대로」고,박찬종하면 「3金 청산」이다.법에 따라 추진되는 가측성(可測性)의 합리적 정국운 영이 이회창씨에 대한 기대로 작용했을 것이다.동전 앞뒷면처럼 군사독재의 또다른 한 측면인 3金시대를 종식하고 새로운 정치를 하자는 박찬종씨의 정치노선이 그의 훼절된 정치약력에도 불구하고 젊은층을꾸준히 사로잡는 요인이었을 것으로 짐 작된다.
물론 한 두 사람을 영입한다 해서 선거결과가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중요한 것은 국민이 정치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고 있고,정치권은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가 하는 큰 흐름의 변화와 대응이다.저질정치의 수준을 높이고 나쁜 관행 의 정치행태를 바꿔야 한다는 욕구가 새 인물,물갈이 갈망으로 나타난 것이다.과거지향 아닌 미래지향의 정치욕구 표출이다.
이번 총선에 거는 두번째 기대와 욕구는 젊은 운동권및 이찬진(李燦振)씨 같은 새 세대의 정계입문과 무관치 않다.젊은 유권자가 많다는 단순한 득표상의 전략만이 아니다.새 세대 정치참여는 자연스런 시대적 요구고 세대교체를 통한 정치개 혁이라는 투표자의 개혁성향과 맞아떨어지고 있는 대세 탓이기 때문이다.30대 초반의 컴퓨터 전문가가 무슨 할 일이 없어 정당에 가입하느냐는 비판의 소리도 있지만 그는 이미 컴퓨터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1세대 원로급이다.정보화시대에 정 보마인드를 정치에 확산시키고 제2,제3의 차세대 「이찬진」을 양성하고 고무시키기 위해서도 그의 정치 입문은 가치있는 일이다.
이번 총선에 거는 세번째 기대는 국민의 절반이고 유권자의 절반인 여성의 정치권 진입 가능성이다.「절반의 도전」이라 할 여성 정치인들의 정치참여는 불가능한 것인가.단 한 명의 지역구 국회의원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게 우리의 낙후된 정 치 현실이다.의회의 여성 비율이 핀란드.노르웨이가 39%,34%인데 비해우리 실정은 현재 2%정도로 세계 1백13위의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지방 자치와 생활 정치라는 정치개념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여성의 정치세력화는 미흡했다.
다행히 이번 총선에선 여성단체가 활발하게 후보를 내놓고 있고정당이 다투어 여성 정치인을 공천하고 영입하고 있다.이 또한 여성의 정치참여라는 시대적 요청을 수용한 결과라고 본다.
광고 문안에 나오는 「산소같은 여자」라는 표현이 얼마나 멋진가.탁한 물에 새 물을 갈아 넣고 더러운 피에 새 피를 주입하면서 오염된 공기에 산소를 불어 넣어 밝고 민주적인 새 정치를하자는게 정치개혁일 것이다.바람이 잘 통하고 공 기가 맑은 곳엔 곰팡이가 슬지 않고 부패가 없다.「산소같은 정치 개혁」을 위해 이회창 지수.이찬진 바람,그리고 절반의 도전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이번 총선에 거는 기대와 소망이 그래서 간절하다.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