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 '피랍' 암초] 정부 "계획대로…늦출 수도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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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치안 악화와 한국인의 잇따른 피랍 사태로 파병 철회론이 여론을 타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파병 시기 조정론도 나온다.

일단 정부는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대미 접촉 창구인 외교통상부와 국방부가 그렇다. 외교부 당국자는 9일 "추가 파병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이미 밝힌 대로다"며 "오전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에서는 파병 여부에 대한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교부나 국방부는 파병 철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한.미 관계의 급속한 냉각을 우려한다. 파병은 한.미 간의 각종 협상과 맞물려 있다. 당장 다음달 용산기지 이전 협상에서 암초가 발생할 수 있다. 국방부는 미군용 아파트 건립 비용 등 이전 비용을 놓고 미국의 최종 양보를 기대하고 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파병국들의 철군 움직임 속에서도 한국이 3000여명의 병력을 이라크에 추가로 투입하며 나타나는 정치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한국의 파병 철회는 대선을 앞둔 부시 행정부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정세 악화로 자국의 파병 인원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외교안보 부서에서는 파병 연기도 곤란하다고 본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라크 정정이 언제 개선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서 파병을 늦춘다면 오히려 더 악화한 상황 속에 파병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군정이 오는 6월 말 이라크인에게 주권을 넘기기로 한 약속 이행을 늦춘다면 정정은 더욱 혼미해질 수 있다. 정부가 파병 시기의 마지노선을 6월로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외교안보 부처는 "파병은 국제사회에 대한 공약"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의 파병 철회 요구와 정치권 일각의 파병 신중론은 변수다. 특히 한국인이 이라크에서 인명 피해라도 보게 되면 파병 반대 여론은 거세질 전망이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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