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불매 운동, 소수가 다수 의견으로 둔갑한 여론 왜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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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심의위는 효율적 심의를 위해 80건의 게시글을 다섯 카테고리로 사전 분류했다. 하지만 주된 관심은 광고 중단을 선동하는 인터넷상의 글들이 합법이냐 위법이냐는 것이었다.

다수 위원은 네티즌의 광고 불매운동이 정상적인 소비자운동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입을 모았다. 박천일 위원은 “소비자운동은 자주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으로, 소비생활의 향상과 국민경제의 긍정적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며 “그러나 이번 사태는 사회 규범과 질서를 뛰어넘어 기업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언론학자인 박 위원은 ‘다원적 무지’ 이론을 들어 “이번 사태는 많은 사람이 의견을 밝히지 않는 가운데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으로 둔갑하고 여론 왜곡이나 대중 착각현상이 일어나는 단면을 보여 줬다”고 강조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박명진 위원장(左) 등 심의위원들이 1일 인터넷‘광고 불매운동’게시글의 위법성 여부를 심의하고 있다. [사진=박종근 기자]

박정호 위원도 “자기가 직접 피해를 본 당사자가 아닌데도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기업에 피해를 주고자 하는 건 위법”이라며 “소비자 권리도 중요하지만 정상적 마케팅 활동을 할 기업의 권리 역시 중요하다”고 불매운동을 비판했다.

언론인 출신의 손태규 부위원장은 “정치·경제 권력뿐 아니라 사회 제 세력이나 다중의 압력으로 인한 언론자유 침해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런 행위를 정당화하는 건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법학자인 정종섭 위원 역시 위법 의견을 냈다. 그는 단순한 의견 개진에 불과하다는 일부 위원의 주장에 대해 “기획·선동·정보 제공을 하는 행위이므로 이후의 행위와 서로 연결돼 있다고 봐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했다.

일부 위원은 광고 불매운동이 ‘표현의 자유’ 범주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윤덕 위원은 “네티즌들이 공익적 목적에 따라 자유의사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며 “업무 방해 등은 사후적으로 규정되는 것인데 관련 글 자체에 그 책임까지 묻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엄주웅 위원도 “단순한 의견 게재 글만 가지고 협박 등의 범죄가 이뤄졌다고 판단할 개연성이 없다”고 전제한 뒤 미국에서도 광고 압박운동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표현의 자유와 기업의 자유가 상충될 때는 표현의 자유가 상위 개념이라고 봐야 한다”(백미숙 위원)는 의견도 있었다.

회의 막바지까지 개인 의견을 밝히지 않았던 박명진 심의위원장은 회의 말미에 “소비자운동은 생산-소비의 직접적 관계를 바탕으로 전개돼야 하고 광고주 등 간접관계까지 포함시키면 범위가 무한정 확대될 것”이라며 이번 광고 불매운동은 합법화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위원들의 판단이 ‘위법’ 쪽으로 모아짐에 따라 심의위는 “해당 글을 삭제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광고주 압박을 독려하는 글 이외에 특정 신문 광고주 리스트와 연락처를 나열하는 행위도 위법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광고 불매운동’의 본질적 부분에 대해 모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글=이상복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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