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미래를 바꾸는 현명한 아버지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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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자녀교육.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있다. 자녀 태교에서부터 아빠의 역할이 중시되고, 자녀공부에 직접 관여하는 아버지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아버지들에게 자녀와 함께 노는(?) 방법을 알려주는 ‘아빠 놀이학교’가 생겨날 정도다. ‘무뚝뚝한 아버지’‘자녀 얼굴 볼 시간도 없이 돈 열심히 버는 아버지’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한 번 혼낼땐 호되게
한가지 일로만 야단치고
욕설 등 감정적 방법을 쓰면 안돼


  “아버지가 바뀌어야 가정이 바로 선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최근 ‘현명한 아버지가 아이의 미래를 바꾼다’를 발간한 청주교대 초등교육과 박성희(51) 교수가 그 주인공.
  지난 20일 오후 청주교대 교수연구실. 박 교수는 그의 딸 유미(21·서울대 교육학과 2)씨와 함께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따님과 같이 계시네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기말고사 마친 딸이 교육학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의논하러 왔다”고 했다.
  딸 유미씨는 “어릴 때부터 친구관계, 진로문제 등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길을 열어준 건 아버지였다”며 ‘아버지=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집은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걸까. 박 교수가 공개하는 ‘현명한 아버지 되기’ 비법을 들어봤다.

자녀의 말 들어주는 방법 익히기
  “내 아이를 ‘인간’으로 대해 주세요.” 교육상담을 전공한 박 교수가 이 세상 아버지들에게 가장 하고픈 얘기란다. “아버지의 권위를 지키는 것과 아이의 의견을 무시하는 건 분명히 다르다”고 운을 뗀 그는 “좋은 아빠가 되는 건 ‘부드러움’을 배우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교육학과 교수지만, 나 조차도 처음에는 아이들과 터놓고 얘기하는 방법을 몰라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특히 둘째 유석(18·고교 중퇴)군의 사춘기 때가 힘들었다. 아버지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와 얘기할 때면 울화가 치밀어 대화를 중단하기 일쑤였다. “어린 아이가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할 때마다 기가 차고, 한대 쥐어박고 싶기도 했다”는 그는 “그러나 화를 내면 아이는 나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고, 혹 때리기라도 하면 아버지를 적대시하기도 한다”며 “대화가 안 된다면 우선 들어주는 연습부터 하라”고 조언했다.
  “자녀의 말을 많이 듣다 보면 그들만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고, 그 속에서 자녀가 겪고 있는 고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내 아이가 저 얘기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게 뭔지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라면 자녀가 마음을 열어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부터는 “너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그러나 아버지 생각으로는 그런 방법보다는 이 방법이 좋겠는데…”라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대화는 많이 할수록 좋다’는 게 박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아이들과의 대화를 위해 아침·저녁식사는 함께 하려고 노력했다”며 “아이들에게 ‘아빠가 너희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학교나 집에서 일어난 작은 일들까지 물어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위는 신뢰에서 나오는 것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잖아요?” 박 교수는 “아무리 부드럽더라도 권위는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역할과 아버지의 역할이 다르다는 건 거스를 수 없는 진리”라고 전제한 그는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아이에게 냉정하기 힘들다. 자녀들을 객관적으로 보고 교육과 훈육을 시키는 건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혼낼 일이 있으면 호되게 혼내야 합니다.” 딸 유미씨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학원에 간다고 하고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이 발각(?)됐다. ‘그러다 말겠지’ 한번, 두번 지켜봤지만 거짓말은 계속됐다. 심하다 할 정도로 야단을 쳤다고 한다. 유미씨는 아직도 그날 일을 기억했다. 그는 “아빠가 그렇게 무서운 분인지 처음 알았다”며 “그때 이후로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똑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한번 혼낼 때 호되게 혼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혼내는 데에도 방법이 있다”며 “한 번 혼낼 때는 한 가지 일로만 야단치고, 욕설을 사용하는 등 감정적인 방법을 쓰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혼을 내는 사람이 흠집이 있으면 되겠어요?”라고 반문한 박 교수는 “아버지가 흐트러짐 없이 사는 모습을 보여야 권위가 산다”고 강조했다. “술을 좋아하지만, 아이들을 키울 때는 최대한 자제했다”는 그는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존경심이 싹트고, 그래야 아버지의 권위도 선다”고 말했다.
 
함께 책보는 아버지 되기
  두 아이를 둔 교수님의 자녀 공부시키기 방법이 궁금했다. “딸이야 워낙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 할 말이 별로 없구요…” 지난해 고등학교를 중퇴한 아들 얘기를 털어놨다. “중학교 때까지 아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박 교수. “공부하라고 채근한 적은 없다”는 그는 “스스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까지 기본토대는 닦아주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데 관심을 보인 아들을 위해 만화책부터 교양서적까지 온갖 책을 사주면서 흥미를 유발했고, ‘아빠와 함께 공부하기’ 시간을 정해 하루 2~3시간씩 영어공부만이라도 하게 했다.
  물론 박 교수는 아이들과 함께 서재를 지켰다. 중학교 때까지 중하위권을 맴돌던 아들 유석군은 고등학교에 들어가 정신을 차렸고, 고2 초반에는 전교 2등까지 성적을 끌어올렸다. 단기간 내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데는 독서와 영어공부가 유일한 밑천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돌연 “학교에서 나와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힘든 결정이었지만, 아들의 의사를 따랐고, 지금은 최상위권 재수생들이 다니는 서울의 한 재수종합반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박 교수는 “아이들에게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오전 6시에는 반드시 기상했다”며 “아버지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니 공부하기를 그토록 싫어하던 아들도 그 시간만큼은 책이라도 읽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요즘 아버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기러기 아빠가 증가하고, 돈으로 아이들의 인심을 사려는 아버지들이 많다. 그러나 진정 내 자녀를 위한다면 많이 대화하고, 몸을 부비면서 친해져야 한다. ‘아버지로서의 자리찾기’는 자녀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말이었다.

프리미엄 최석호 기자
사진= 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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