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점령당하는 수도 서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8호 18면

27일 오후 7시30분. 서울 광화문 네거리 주변에 집결해 있던 전투경찰은 대오를 갖춰 서울광장 방면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물대포, 방송 차량, 철망을 씌운 버스 등 진압장비도 뒤를 따랐다. 경찰이 저지선을 형성한 곳은 한국프레스센터 앞. 장소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작전도 달라졌다. 버스로 도로를 차단하고 그 뒤에 전경을 배치하는 방식 대신 전경을 시위대 앞에 세웠다. 그리고 “불법 시위를 중단하지 않으면 강제로 해산하겠다”는 방송을 반복했다. 두 달 가까이 계속돼 온 불법 도심 점거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변질된 촛불집회

28일 새벽까지 큰 충돌은 없었다. 시위대가 경찰에게 시너를 뿌리는 등 마찰이 있었으나 며칠 동안 계속되던 시가전과 같은 상황은 다행히 없었다. 하지만 무형의 폭력이 난무했다. 사복 경찰이 증거 수집을 위해 사진을 찍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의 시선이 카메라를 맨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카메라를 들고 취재활동을 한 사람은 많았다. 수많은 인터넷 매체 사진기자, 시민기자라 일컫는 인터넷 사진동호회 사진가들로 넘쳐났다. 그중에서 신문사 사진기자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취재 현장에서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한국사진기자협회가 제작한 주황색 완장을 팔에 차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완장을 찬 기자들에게 소속사를 물었다. “중앙일보”라고 말하는 순간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이 쏟아졌다.

사진기자만 봉변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광우병 대책회의’ 소속 청년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시민들의 휴대전화에 찍힌 사진을 검색했다. “예민한 것이 찍혔을 수 있으니 좀 보자”고 했다. 한 50대 남성은 청년들의 서슬에 눌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자신의 휴대전화를 넘겨줬다.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현장의 사진기자를 위협하고 선량한 시민의 사생활이 담긴 휴대전화를 강제로 검사하는 것이 ‘촛불 문화제’의 분위기다.

사진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내려다 본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 현장, 27일 자정 모습이다. 시위대는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도로를 점거하고 있고 전경은 계속되는 철야 근무에 지쳐 땅바닥에 누워 잠을 청한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매일 밤 불법 시위에 의해 도심이 마비되는, 무법의 도시가 되었다.
신인섭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