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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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이를 가졌다니요? 누가요?』 아리영은 어리둥절해 되물었다. 『아가씨,요즘 세상에 아기 없는 것이 무슨 허물입니까.그러다 늦게 가지실 수도 있는 겁니다.이럴 수 없습니다.제가 무슨낯으로 저승가서 마님을 뵙겠습니까.』 제주댁은 아리영을 원망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들을 수 없군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해 보셔요.』 정색해서 다그치자 제주댁은 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짓더니 「마을에 도는 해괴한 소문」이라는 것을 실토했다.
자신의 친정 손녀딸인 애소가 아리영 남편인 이소장의 아이를 임신했고,그것 때문에 소장 내외가 이혼했다는 내용이었다.
농장 마을은 물론이고 읍내까지 소문이 파다하게 나도는 바람에애소의 계모인 새댁이 어쩌면 좋으냐고 서귀포로 전화해 왔다는 것이다. 『당장 쫓아가서 따졌지요.그랬더니 죽어도 아니라지 않습니까.』 『그럼 아닌 거겠지요.』 아리영에게 제주댁은 고개를저어보였다.
『그게 아닙니다.병원에 끌고가 진찰했더니 분명히 임신이랍니다.』 『….』 아리영은 할말을 잃었다.
『애비가 누구냐고 해도 요 못된 것이 죽어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그려.한데 농장과 목장 일꾼들 사이에 쉬쉬하며 소문 나돈 게 오래 됐다지 뭡니까.』 『…이소장 아이라고?』 대신 아리영이 말을 이었다.
제주댁은 잠잠했다.긍정의 표시였다.
『이소장한테 직접 물어보시지 그랬어요.』 『어떻게 그런 말씀까지….』 『소문이라는 것이 반드시 사실하고 같은 건 아니니까두 사람 앉혀놓고 자초지종을 들으신 다음 차후 일을 정하도록 하셔요.사실이 그렇다면 결혼시키는 거구요.』 남의 얘기하듯 하는 아리영을 향해 제주댁은 비명(悲鳴)지르듯했다.
『아가씨!』 『아주머니,분명히 말씀드려두지만 전 그 일 때문에 이혼한 건 아니예요.어디까지나 두 사람간의 오랜 문제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이혼한 이상 이소장이 뭘하건 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 말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제주댁이 돌아간 다음 아리영은 현관 바닥에 맥없이 주저앉았다.견딜 수 없는 배신감이 아리영의 뼈 마디마디를 온통 사이 트게 만들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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