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떠나고 싶은 마음을 디자인한다 … 외국어는 필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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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여행기획자가 되기 위해선 시선을 밖으로 돌려야 합니다." 신발끈 여행사 장영복 실장은 직원들에게 늘 국제감각을 강조한다. [사진=김상선 기자]

세계여행관광협의회(WTTC)에 따르면 관광산업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4%를 차지한다. 종사자는 약 2억3100만 명이다. 2010년까지 전 세계 GDP의 11.6%, 총 고용의 9%를 담당할 것으로 WTTC는 전망한다. 한국의 관광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해외여행 부문 성장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해외여행객 수는 1332만여 명. 전년 대비 15% 늘었다. 여행상품 기획자는 이런 여행객들을 위해 다양한 여행상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하나=해외여행 상품 개발은 시장조사부터 시작된다. 유망 여행지를 골라 주요 관광명소, 항공편, 호텔 같은 기초 정보를 수집하는 게 첫 번째다. 다음은 상품성을 검증한다. 상품으로 내놓는다면 며칠 일정이 좋을지, 동선은 어떻게 짤지 따져본다. 이때 현지 협력업체와 가격, 부대조건을 협상하는 게 기획자의 중요 업무다. 아무리 매력 있는 여행지라 해도 가격경쟁력이 없거나 한국 시장에서 통하지 않을 것 같으면 탈락이다. 상품화가 결정되면 바로 상품 알리기에 돌입한다. 마케팅·홍보 담당자와 협력해 광고, 프로모션용 이벤트를 한다. 판매가 시작되면 ‘애프터서비스’도 한다. 소비자 상담은 영업부서 실무자들이 담당하지만, 상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하거나 소비자가 추가 옵션을 요구하면 기획자가 나서게 된다.

◇공짜 여행은 실컷?=해외시장 조사가 잦다 보니 여행상품 기획자들은 오해받을 때가 많다. “회사 돈으로 공짜 여행 실컷 하는 팔자 좋은 직업”이라는 거다. 하지만 현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속 모르는 소리”라고 입을 모은다. 하나투어에서 불교성지, 문화탐방 상품 20여 개를 기획한 특판사업부 임지현(35) 종교문화팀장은 “여행과 여행업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했다. 내일여행 대양주특수사업팀 김연진(31) 과장은 “아무리 유명 여행지에 간다 해도 여행을 즐길 시간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일반 여행객들이 관광할 때 기획자는 교통편과 동선을 점검한다. 부대시설 수준은 어떤지, 주변엔 뭐가 있는지 꼼꼼히 기록해야 한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도 못한다. 가능한 한 여러 숙소를 돌며 비교한다. 김 과장은 “이탈리아 출장 땐 하루에 호텔만 여섯 곳을 돌기도 했다”고 전했다. 회사에 돌아가면 이런 정보를 정리해 리포트를 내야 한다.

◇외국어 능력 필수=여행상품 기획자가 되기 위한 자질로는 외국어 능력이 첫손에 꼽힌다. 전화·e-메일을 이용해 현지 협력업체와 접촉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일만 놓고 보면 오히려 무역회사에 가깝다. 최신 여행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국제관광 콘퍼런스, 해외여행 시장(트레블 마트)에 참석해야 할 때도 있다. 영어는 기본이고 지역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해당 국가 언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특정 종교·문화 관련 상품을 기획하기 위해선 해당 분야 전문지식도 필요하다.

여행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모두투어 남태평양사업부 황혜란(31) 기획팀장은 “요즘 신입사원들은 최소 1년 이상 해외 경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딱히 전공에 제한은 없지만 갈수록 관광경영학·호텔경영학 같은 관광 관련 전공자가 느는 추세다. TC(Tour Conductor)·관광통역 안내사 자격증도 마찬가지. 채용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실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입사 후에라도 따두는 것이 유리하다.

여행사 입사 후 바로 상품기획을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소 2~3년 영업파트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기획 담당으로 옮겨 가는 게 보통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여행상품 기획자의 연봉은 평균 2315만원(2007년 기준). 하지만 소속 여행사의 규모와 개인별 경력·실적에 따라 편차가 큰 편이다. 개발한 상품이 많이 팔렸을 경우 별도의 인센티브를 받기도 한다.

글=김한별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자료 협조:인크루트 www.incruit.com


“고객별 맞춤형 스케줄 짜주는 여행 코디네이터 시대 올 것”
신발끈 여행사 장영복 실장

여행상품 기획자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개념의 직업이 있다. 여행 코디네이터다. 고객별로 맞춤형 여행 스케줄을 짜주고, 고객이 원하면 직접 동행하며 안내하는 역할까지 한다. 한마디로 여행의 A부터 Z까지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을 말한다. 2004년 대한상공회의소가, 2007년 여성부가 유망직업으로 선정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선 여행 코디네이터의 개념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여행사가 상품기획, 영업, 상담, 인솔 업무를 세분화해 놓고 있다. 일부에서 특판부의 형태로 ‘토털 서비스’를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기획·개발 쪽에 치우친 형태다. 또 실제 상품 운영은 현지 진행업체(랜드사)에 의존하고 있어, 여행 코디네이터의 개념과는 거리가 먼 형편이다.

업계에서는 배낭여행 전문 여행사 신발끈의 장영복(44) 실장 정도를 ‘여행 코디네이터’에 비교적 근접한 사람으로 꼽는다. 장 실장은 배낭여행 1세대 출신이다. 1991년 대학생 신분으로 신발끈을 창업한 이래 다른 여행사에선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여행상품들을 꾸준히 소개해 왔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 아프리카 트럭(trolley) 여행, 아시아 기차 여행, 중국 칭짱 열차, 일반인 남·북극점 여행이 대표적이다. 2007년 남극 여행상품을 내놓을 땐 고객 1명과 직접 남극점까지 동행하기도 했다.

그는 빼어난 여행 기획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국제 감각’을 첫손에 꼽는다. 신발끈이 국내 최초로 소개한 스페인 ‘순례자의 길’의 경우 유명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 세일즈 담당자와 여행 얘기를 나누다 알게 된 곳이다.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등반 상품의 경우 한국인 랜드사를 거치지 않고 현지인과 직거래를 뚫어 기존의 상품값을 100만원 가까이 낮췄다.

그는 “국내 기준에 머물지 말고 밖으로 시선을 돌려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해보라”고 권한다. “우리나라에도 스킨스쿠버, 요트, 캠핑 정도는 할 줄 알아야 여행상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때쯤 되면 ‘진짜’ 여행 코디네이터가 활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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