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칼럼

한국 축구와 한국 경제의 공통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 우스갯소리가 두 나라 축구 전문기자들 사이에서도 공감을 얻었던 모양이다. 포럼 직후 두 나라 주요 언론들은 이 농담을 잔뜩 인용해놓았다. 정작 주제 발표문은 오간 데가 없었다.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만큼 두 나라의 축구 스타일과 경제의 공통점이 설득력이 있었다는 반증이었다. 다행히 몇 달 후 열린 월드컵에서는 양국 축구 스타일의 장점이 더 크게 발휘됐다. 우린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신들린 플레이를 펼쳤다. 일본도 나카다 히데토시(中田英壽 )의 선수의 진두 지휘로 예상 외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히딩크 감독이 떠나자, 한국 축구는 비능률과 허약 체질로 대표되는 옛 스타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희한한 것은 선수들의 면면이다. 월드컵 4강 당시의 선수들이 여전하다. 박지성 선수를 포함한 일부 선수는 기량이 일취월장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국가대표로서 팀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도 아시아 최강의 위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반면 한국을 벗어난 히딩크 감독은 2006년 월드컵 에서 호주를 16강으로 이끌었다. 또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유로 2008에서 러시아를 이끌고 기적의 명승부를 잇달아 연출해내고 있다. 역시 축구는 감독의 스포츠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마치 야구가 투수의 스포츠이듯.

물론 감독은 운동장에서 직접 뛰지는 않는다. 머리와 입으로 싸울 따름이다. 당장 경기 전에는 상대팀에 맞춰 전략을 짜고, 선발진을 구상한다. 팀의 정신 무장을 도모할 말을 쏟아내는 한 편 상대방의 사기를 꺾을 언론 플레이도 구사해야 한다. 실제 경기가 시작되면 상황에 따라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이 점에서 축구는 한 나라 경제와도 흡사하다. 한 나라의 리더, 즉 대통령은 직접 경제에 큰 기여를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경제 주체가 활발히 경제 활동을 하도록 독려할 수 있을 뿐이다. 멋진 청사진과 이를 달성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시의적절한 말로 국민을 감동시키고 설득해야 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통령 개인이 가진 것 역시 오로지 머리와 입뿐이다. 대통령은 축구 감독의 운명을 타고 태어난다. 경기를 조율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 또한 감독 외에는 없다. 이 점에서 히딩크 감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에게 배워야 하는 것은 우리 축구 대표팀 감독만이 아니다. 우리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히딩크의 창의적 리더십에서 박종환의 권위적 리더십으로 퇴행하는가?
꼭 15년 전 국내 스포츠계의 명감독들을 잇달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축구의 박종환 감독이나 프로야구의 김응룡 감독 등 모두 6명이었다. 언제나 좋은 성적을 내는 그들로부터 한국형 리더십의 본질을 탐색해보겠다는 야심찬 기획이었다. 명장들을 다 인터뷰 하고 나서 적잖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 농구 전성기를 이끈 연세대 최희암 감독 같은 경우를 빼고 나면, 대부분의 감독들은 권위적 리더십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종환 감독의 솔직한 고백은 약간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물론 인간적으로는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 매를 들기도 한다는 언급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스포츠 선수들은 거칠어. 통제하기가 쉽지 않아. 나나 (야구의) 김응룡처럼 배짱이 있는 감독들은 막 나가는 선수들과 맞장을 떠서라도 휘어잡아. 그게 비결이야.”

당시는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상황이었다. 이런 권위적 리더십에 대한 언급이 매력적으로 비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리더십은 시대와 상황에 맞아야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박 감독이 신화를 이루던 당시에는 권위적 리더십이 통하던 때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권위적 리더십이라야 빛을 발하던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 권위적 리더십은 서서히 붕괴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은 한 때 나락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1996년 아시안컵에서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국가 대표팀 선수들이 고의적으로 태업을 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지금은 박종환·김응룡 감독을 포함한 국내 스포츠계의 주요 감독들이 대부분 민주적 리더십을 선보이고 있다.

권위적 리더십이 붕괴하고 민주적 리더십이 막 등장하고 나면, 당장 성적이 오르지 않을 수 있다. 이 때가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면 문제가 풀릴까? 성적이 신통치 않은 허정무 대신 박종환 감독에게 국가대표팀을 맡기면 나아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적 리더십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창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히딩크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 축구뿐만이 아니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뜻대로 안 살아난다고, 과거 방식으로 퇴행해서는 안 된다. 개발 지상주의 시대의 경제 리더십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의 리더들이 혹여 잠시 그런 유혹을 느꼈다 해도 한시 바삐 그 유혹을 접어야 한다.

김방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