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對北경제제재 해제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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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이「북한 살리기」로 가시화되고 있다.워싱턴의 이같은 정책 의지는 최근의 대북(對北)식량지원 카드에 이어 최혜국대우(MFN)부여를 포함한 단계적 대북 경제제재 해제구상으로 표출되고 있다.따라서 아직 남북 당사자삐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대북 정책은 올해 그 어느때보다 거센 역풍(逆風)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 구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워싱턴의 대북 정책 구상폭이 상상외로 넓다는 것이다.사실 미국의대북 경제제재 완화 자체는 이미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양국은이미 지난 94년 10월 북-미 제네바합의에서 단계적인 경제제재 완화에 합의한 상태다.그 결과 미국은 지난해 1월20일 통신등 부분적 해제조치를 취한 바있다.
또 지난해 12월 경수로공급협정이 타결된 이상 추가적인 경제제재 해제는 예상된 수순이었다.그러나 미국이 고려중인 대북 경제제재 해제 리스트에 최혜국대우도 포함돼있다는 점은 다소 충격적인 대목이 아닐수 없다.이같은 경제제재 해제 구 상은 워싱턴의 정책 초점이 당분간 북한체제의 연착륙(軟着陸)에 맞춰질 것을 예고한다.즉 북한을 「고장난 비행기」로 파악하고 있는 미국은 이 비행기에 당분간 연료와 식량을 제공함으로써 불시착을 막자는 것이다.또 이 과정을 통해 기체를 조금씩 안전지대로 유도하자는 구상이다.
문제는 이같은 정책 전개 과정에서 서울이 소외되는 것은 물론이것이 일반 국민 눈에 자칫 분단 고착화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북한은 94년 7월 김일성(金日成)사망이래 줄곧 남한 배제전략을 고수해왔다.따라서 아무리 미국이 남한 과 긴밀한 협의를 거친다 해도 기본적으로 이는 북-미 접근이란 인상을 지울수 없다.
물론 미국의 대폭적인 경제제재 조치 해제가 올 상반기중 취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우선 최혜국대우만 하더라도 미의회의 「잭슨-바닉(Jackson-Vanik)법안」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70년대 중반에 제정된 이 법안은 『자유경제체 제가 아니거나 또는 자유로운 이민(移民)을 가로막는 국가에 대해서는 최혜국 대우를 부여 못한다』고 못박고 있다.또 북-미간의 무역거래를 허용하려면 적성국교역법을 해제해야 한다.그러나 선거철인데다공화당이 장악하고있는 미국 의회가 최 소 올 상반기중 이같은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또한 4월 총선을 앞둔 한국정부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같은 점을 감안할때 미국은 올 상반기중 행정부의 명령으로 해제가 가능한▶북한 동결자산 해제▶북-미 금융거래등을 허용한후평양의 태도를 보아가며 하반기에 2단계 조치를 취할 것으로 관측된다.1,400만달러 상당의 북한 동결 자산은 50년대 북한주민 명의로 미국은행에 예금된 돈으로 6.25가 발발하자 미재무부가 규정에 따라 동결시킨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가 남한과 긴밀한 사전 협의를 거쳐야하는 것은 물론 극도로 신중하게 실시돼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삼성경제연구소의 정영식(鄭泳植)선임연구원은 『최혜국대우같은 조치는 경제적 효과보다 정치적 파급효 과가 엄청나게 크다』며 『미국이 평양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면 곤란하다』고지적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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