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촛불’ 다시 폭력으로 변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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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새벽 광화문에서 시위를 벌이던 촛불집회 참가자가 망치를 휘둘러 경찰버스 유리창을 깨자 버스 안에 있던 전경이 소화기를 뿌려 이를 제지하고 있다. 시위대 일부는 이날 아침까지 세종로 네거리를 점거해 오전 이 일대의 교통이 마비됐다. 창문 아래쪽에 ‘도로는 국민소유 도로행진은 국민자유’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뉴시스]

‘48시간 비상국민행동’의 일환으로 치러진 촛불집회가 폭력과 불법으로 얼룩졌다. 정부가 추가협상 결과를 발표한 21일 밤부터 열린 가두 시위로 경찰과 시위대 모두 부상자가 속출했다.

중·고생과 가족 단위 참가자는 줄고 노조·재야 단체 소속 참가자가 늘어났다. 극심한 교통 정체로 도로 점거에 나선 시위대와 항의하는 운전자·승객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불법·폭력으로 얼룩진 시위=22일 0시쯤 촛불 시위대는 서울 세종로네거리에 있던 전경버스 4대에 대형 밧줄을 묶었다. 차를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버스 창 밖으로 소화기를 뿌렸다. 흥분한 시위대는 유리창을 부수고 플라스틱 물병과 돌을 던졌다. 이날 새벽 7대의 전경버스가 파손됐다.

오전 3시 연모(32·무직)씨가 전경 버스의 연료 투입구를 열고 전단지에 불을 붙이려다 주변 시민에게 붙들려 대책회의에 넘겨졌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집회에 자주 갔는데 ‘버스에 불이 한 번 붙어야 일이 빨리 진행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밤샘 시위에서 경찰은 연씨 등 시위 참가자 12명을 연행했다. 검찰은 21일 새벽 시위에서 여경기동대 소속 경관의 얼굴을 때린 혐의로 서모(46)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앞서 21일 오후 7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작된 촛불 집회엔 9600여 명(경찰 추산, 주최 측 6만 명 주장)이 모였다. 정부의 추가협상안 발표에도 불구하고 전면 재협상을 요구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48시간 비상국민행동’ 집회였다. 오후 9시 참가자들은 도로를 점거한 채 세종로 네거리로 진출, 전경 버스 수십 대로 만든 차단벽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대치했다.

오후 10시 무렵 시위대는 모래 주머니를 쌓기 시작했다. 일부 참가자는 트럭을 동원해 모래를 날랐다. 시위대는 ‘민주산성’ ‘국민토성’이라고 불렀다. 10일 컨테이너 박스로 벽을 세웠던 정부·경찰에 대한 항의였다.

이날 충돌로 경찰 4명이 다쳤다. 시위 참가자 20여 명도 부상했다. 폭력 양상에 대해 대책회의 관계자는 “주최 측이나 참가자 모두 자제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FTA 시위 등과 비교해봐도 평화적이다”고 반박했다.

◇“노조·대학·재야 소속이 대부분”=사흘간 시위로 서울 도심 교통은 마비 상태였다. 21일 오후 5시쯤 시위대 130여 명은 세종로·태평로 인근 5~6개 차로를 점거한 채 연좌 시위를 벌였다. 예고 없던 가두 시위에 운전자·승객은 시위대에 항의했다.

중·고생 및 가족 단위 참가자는 크게 줄었다. 빈자리는 노동·재야단체의 ‘깃발’이 대신했다. 경찰 관계자는 “참가자 중 대부분이 노조와 시민·재야단체·대학 총학생회 소속”이라고 밝혔다.

국민대책회의는 22일 오후 7시에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 집회를 열었다. 2500여 명(경찰 추산)의 참가자들은 집회 뒤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벌였다. ‘거짓촛불반대 애국시민대연합’은 이날 오후 6시 청계광장에서 맞불집회를 열었다. 이틀 연속 반대 집회를 연 이들은 “ 촛불집회가 초기의 건강한 모습과 같은지 되돌아보라”며 중단을 요구했다.

천인성·한은화·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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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 꺼야" 58% "촛불 계속 켜야"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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