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수 아니라 이지수로 불러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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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충남 태안의 안면고 3학년 이지수(18)양은 올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자 친구들의 질문 공세를 받았다. “성씨가 왜 배씨에서 이씨로 바뀌었어?” 이 양은 당당하게 말했다. “올해부터 호주제가 폐지됐잖아!”

이 양은 엄마의 재혼으로 새 아빠를 맞았지만 아빠와 성이 달라 이상한 눈초리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올 1월 1일부터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성씨를 바꿨고, 그 때 느낀 행복과 사람들의 인식 등에 대한 아쉬움을 글로 썼다. 이 양의 글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주최한 ‘2008 전국 양성평등 글짓기 대회’에서 고등부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이 양은 “어머니와만 사는 아이들도 호주제 폐지로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양성 평등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사회의 시선이 바뀌어야 하는 만큼 남들에게 당당하게 성이 바뀌었다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생 최우수작은 충남 입장초등학교 6학년 이하영(12)양이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 있는 고모에 대해 쓴 ‘특전사 우리 고모’가 차지했다. 덩치가 크고 어깨도 떡 벌어진 이 양의 고모는 재작년 대학을 졸업했지만 ‘얼굴이 못 생겨서’ 번번이 취직에 실패했다고 한다. 이 양은 “취직에 실패할 때마다 뒷마당에서 소리 죽여 우는 고모의 눈물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라고 했다. 남자는 능력만 있어도 취직이 되지만, 여자는 능력도 있고 얼굴도 예뻐야 된다는 사회적 시선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양은 “고모가 군대에 간다고 했을 때 ‘여자가 군대에 간다는 건 말도 안된다’며 가족들이 말렸지만 ‘여자도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고모의 말에 설득당했다고 한다. 이 양은 “고모가 특전사라고 하면 친구들은 ‘여자가 어떻게 특전사가 될 수 있지?’ ‘여장 남자 아니냐?’라고 한다”라며 “여자라서 안 된다고 하기보다 남녀의 개성을 존중한 평등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중학생 최우수작은 대전 송강중 2학년 전영현(14)양이 받았다. 전 양은 ‘엘리자베스에게 박수를’이라는 글에서 동화책 ‘종이 봉지 공주’에 등장하는 공주 엘리자베스와 사회의 ‘유리천장’에 대해 썼다. 전 양은 “엘리자베스는 용에게 잡힌 왕자를 구하러 가면서 예쁜 옷이 불에 타 종이 봉지를 입어야 했지만 왕자는 ‘공주처럼 챙겨 입고 오라’며 돌려보낸다”라며 “그녀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모가 아니라 용기와 도전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적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소설가 신경숙씨는 “글 쓰는 일을 일상화시킬 줄 아는 세대가 등장한 것 같다”고 평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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