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1년전 예약해야 먹는 레스토랑 ‘상상초월 메뉴’에 비밀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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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혁명가 페란 아드리아
만프레드 베버-람베르디에르 지음, 이수호 옮김, 들녘, 224쪽, 1만 2000원

지난 4월 이탈리아 명품 생수 회사인 ‘산 펠레그리노’가 ‘2008 세계 최고 레스토랑’ 50곳을 발표했다. 요리사·음식전문기자·레스토랑 비평가 등 전문가 700여 명이 뽑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목록 중 맨 윗머리를 장식한 곳은 스페인의 ‘엘 불리’(El Bulli, 개의 한 종인 불테리어를 의미하는 스페인어)였다.

고즈넉한 지중해 연안 마을에 위치한 엘 불리. 이 책은 테이블 10개, 하루에 50명 남짓한 손님만을 받는 작은 레스토랑을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은 셰프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의 행적을 뒤쫓는다. 독일 시사주간지 포쿠스의 요리 칼럼니스트인 저자의 조용하면서도 분석적인 시선이 인상적이다.

‘요리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아드리아는 엘 불리를 ‘분자요리’(molecular cuisine)의 전초기지로 삼아 요리 혁명에 나섰다. 재료를 자르고 굽고 끓이고 튀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분자의 물리화학적 반응을 연구해 음식을 만드는 방식인 분자요리는 최근 서구에서 유행하는 첨단 트렌드다. 재료의 맛과 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아드리아는 2000년부터 엘 불리를 분자요리의 전초기지로 삼고 ‘거품이 살아있는 맥주 아이스크림’ 같은 창조적인 요리를 선보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예약 대기자가 20만 명을 넘어간 해가 있었는가 하면 최소한 1년 전에는 예약을 해야 아드리아의 손맛을 볼 수 있을 만큼 엘 불리는 성황을 이룬다.

하지만 아드리아는 10월부터 3월까지는 내처 가게 문을 닫고 실험실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한다. 5000여 건의 실험을 거친 끝에 결정된 200여 개의 요리는 다음해 엘 불리의 새로운 메뉴판을 채운다. 때문에 아드리아의 요리는 패션 디자이너의 작품처럼 ‘컬렉션’이라 불린다.

아드리아는 스스로의 요리를 ‘누에바 누벨 퀴진’이라고 정의했다. 프랑스 정통 요리인 오트 퀴진(haute cuisine)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누벨 퀴진(Nouvelle Cusine. 새로운 요리)에 또다시 ‘새로운’ 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누에바(Nueva)’를 붙인 것이다.

저자는 노동자 계층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 과정조차 마치지 못한 아드리아를 일으켜 세운 힘으로 ‘끊임 없이 새로움과 놀라움을 추구하는 능력’을 꼽는다.

“메뉴는 한 편의 영화와도 같습니다. 시작과 끝이 있고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1년 후에 저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똑같은 영화를 다시 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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