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브리핑制 겉만 번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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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과천청사 1동에 자리잡은 합동 브리핑실에는 207명의 기자가 등록돼 있다.

108개의 낮은 칸막이를 해 놓은 90여평의 공간은 독서실을 연상시킨다. 브리핑이 없는 시간엔 정부 관료들의 모습을 좀처럼 찾기 어렵고 기자들만 북적댄다. 사무실 방문 취재가 금지돼 기자들은 정부 관료들이 찾아오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브리핑도 서구식 연단형 기자회견 방식으로 바뀌었다.

재정경제부.산업자원부 등 경제 부처의 기자실을 한데 모아 합동 브리핑실로 문을 연 지 6일로 1백일이 됐다. 투명한 국정을 펼치고 누구나 취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처음에 어색해 하던 기자나 공무원 모두 이제는 확 달라진 취재 환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습이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그러나 이 같은 외양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제공되는 정보의 질은 종전과 달라진 게 없거나 오히려 낮아졌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부처마다 내놓는 보도자료엔 자신들의 업적은 널리 알리되 잘못은 최대한 감추려는 생리가 여전하다. 유일한 취재 통로인 공식 브리핑에서도 어려운 질문엔 은근슬쩍 넘어가고 원하는 질문에만 대답하는 행태가 자주 발견된다. 지난주 재경부는 준비된 답변을 하기 위해 일부 기자에게 입맛에 맞는 질문을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정보를 제공하는 쪽이 늘 우월한 지위에 설 수밖에 없다. 정보가 제한된 데다 그나마 주는 쪽에서 마음대로 주무르는 형국이다.

합동 브리핑실은 정부와 언론 간에 건강한 긴장관계를 조성한다는 새로운 언론정책의 가장 구체적인 산물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기자들의 취재를 제한하고 의도된 보도만을 양산해 내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국민의 알 권리가 가로막힌다면 정부와 언론 사이에 건강한 관계가 유지되기는 어렵다.

홍병기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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