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위반 적발된 후보들 "당선돼도 무효" 줄사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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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경찰.일반 유권자 등 전방위로 확대된 불법 감시망에 덜미를 잡힌 총선 후보들이 아예 선거를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경남 마산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흥식(57)후보는 부인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적발된 데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5일 후보를 사퇴했다.

李후보의 부인 金모(48)씨는 주민 李모(47)씨에게 남편의 선거운동을 도와달라며 1000만원을 건넨 혐의(금품 제공)로 4일 구속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李후보는 "시민과 지지자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하고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사죄한다"며 "모든 선거운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겠다"고 했다.

유명세를 타던 후보의 사례에서도 이 같은 기류가 감지됐다. 경남 거제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도 이날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그가 밝힌 사유는 "탄핵 정국으로 정책과 인물 선거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金후보의 사퇴 결심에는 선거운동원이 선거법 위반 행위로 구속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현지의 반응이다.

金후보의 조직부장 金모(55)씨가 金후보의 사무실에서 부녀회장 李모(38)씨에게 두차례에 걸쳐 50만원씩을 건넨 혐의로 4일 구속됐다. 경찰은 이 돈이 金후보에게서 나왔는지에 대한 수사도 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서울 서초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던 박원홍 의원이 후보 등록을 며칠 앞두고 지구당의 비밀장부가 선관위에 적발돼 본인과 부인 등 지구당 관계자들이 대거 검찰에 고발되자 출마 포기를 전격 선언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후보들이 법원의 판단을 받기도 전에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현상은 총선 환경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당장 선관위는 본인은 물론 직계 가족이나 선거사무장.회계책임자 등이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되면 정치 포털사이트에 내역과 실명을 여지없이 공개하고 있다. 체납.전과 등 후보자의 도덕성이 판단 기준으로 주목받는 와중에 이런 결점은 상대 후보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법원도 선거법 위반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고 밝혀 열심히 뛰어봤자 당선 무효가 날 가능성이 커진 것도 후보들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포상금.과태료제 등 감시망이 촘촘해진 만큼 자진 사퇴하는 후보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경우 선처를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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