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1시간 인터뷰하고 30초만 골라서 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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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 전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는 의미 있는 기사를 특종 보도했다.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16세 때 발표한 미공개 시를 138년 만에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이 특종보다 더 눈에 띄었던 건 이를 뒷받침할 랭보 전문가의 인터뷰였다. 인터뷰 첫 문장은 “순수 문학적 측면에서 보면 아주 대단한 발견은 아니다”였다. 담당 기자로서는 이런 반응이 꽤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있는 그대로 전문가의 말을 전했다. 르 피가로의 힘은 이런 곳에서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파리에 있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글라이울 마마가니 홍보관이 지난달 한국 특파원들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이 가열되자, 파리 주재 한국 특파원들은 OIE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우려에 대해 가장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회견은 OIE 측의 요청에 따라 특파원 두 명만 대표로 참석했다. OIE 측은 한국민이 궁금해 하거나 걱정할 내용의 상당 부분을 해결해 줬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난 뒤 마마가니 홍보관은 “한국 언론은 한시간 인터뷰하고 또 10초만 내보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비아냥처럼 들린 이 말은 MBC의 PD수첩을 두고 한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PD수첩에는 “OIE 결정은 권고 사항일 뿐 강제력이 없다”는 취지의 코멘트만 반영됐을 뿐이었다. 30초쯤 될 듯했다. 한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OIE 관계자는 이런 당연한 얘기 말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장 뤽 앙고 국제수역사무국(OIE) 부회장이 MBC PD수첩과 인터뷰하고 있는 장면. [MBC - TV 촬영]

마마가니 홍보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물었다. 그는 “PD수첩 제작팀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 여부 등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와 한국 특파원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과학적인 설명을 했다. <본지 5월 19일자 8면> 그러나 방송에는 모두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공정하지 못한 보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PD수첩이 프로그램 첫머리에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것처럼 보도한 미국 여성은 쇠고기와 무관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PD수첩은 처음부터 기사 방향을 정해 놓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이용해 국민에게 겁을 줬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그들이 선정적인 겁주기 대신 이명박 정부의 졸속 협상을 비판했다면,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전문가들 의견을 그대로 전했더라면 큰 비난은 없었을 것이다. 그게 진정한 언론의 자세다. 르 피가로라고 자기들 특종을 별거 아니다고 말한 전문가 말을 싣고 싶었을까 말이다.

전진배 파리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