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호 선원 귀환 이모저모-"고향 돌아간다" 나흘前 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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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북한측은 우성호 선원들을 송환하기 직전인 오후3시6분 사망선원 3명의 유골을 든 인도관계자들을 먼저 판문점 군사정전위 본회의실 부근으로 내보내 송환에 대비.
오후3시58분 박재열(朴在烈.44)씨등 생존선원 5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판문점 북측 지역인 판문각 계단을 걸어내려오기 시작. 朴씨등은 군사분계선을 넘기전 북측 관계자들로부터 무언가 귀띔을 받자 들고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일제히 북쪽을 향해 돌아서 북한측 보도진과 관계자들을 향해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
이들은 북한측을 향해 『남포만세』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 일부 선원은 『안녕히 계십시오.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기도.
…유엔사 관계자들에게 인도된 선원들은 송환소감을 묻는 보도진에게 『그동안 고생은 하지 않았으며 조사받을 때부터 줄곧 여관에 있었다』고 설명.한 선원은 『가혹행위가 없었느냐』는 질문에『없었다』고 답변.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던 우성호 선원들에게 귀환소식이 전해진 것은 22일 아침이었다는 것. 최연장자 박재열씨는 이날 아침 여느때와 같이 식사를 끝내고숙소에 앉아 있었는데 수사관계로 친해진 북한 기관원이 찾아와 『26일 돌아가게 됐다』는 말을 전해줘 무사귀환을 알게 됐다고말했다. 이때까지는 수사때마다 북한 기관원들로부터 『당신들은 빨라야 내년 봄, 아니면 영원히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을 받으며 노심초사(勞心焦思)의 나날을 보냈다는게 朴씨의 설명이다.
…선원들이 북한에서 가장 고초를 겪은 것은 피격직후부터 한달간 남포에서 격리돼 조사를 받았던때라는게 김부곤(金富坤)선장의말. 북한 기관원들은 구타등 가혹행위는 없었으나 조사때마다 가족사항등 선원동료간의 인적사항이 틀리거나 출항경위.조업상황.군경력등에 있어 서로의 진술이 차이가 날 경우 『고향 구경을 못할 것』이라는 등의 위협을 할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 다고 회고. …피랍선원들을 북에서 조사했던 기관원들은 자기들 신분을 숨긴채 『법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만 밝혀 이들의 조사주체가 관심사로 대두.
특히 최근 북에서 군부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상황이어서 이같은궁금증이 증폭되는 형국인데 이와관련, 정부기관의 한 당국자는 『북에서 이들이 받은 신문내용을 볼때 기관원들은 「국가안전보위부」소속인 것 같다』고 분석.
…남북대화사무국 전방사무소에 설치된 임시분향소에 대기중이던 유족들은 오후4시20분쯤 유골이 도착하자 일제히 오열.유족들은흰 보자기에 싸인 유골을 대하자 제대로 분향도 못한채 유골을 부둥켜안고 이름을 외치며 통곡.
특히 피격 당시 현장에서 사망한 심재경씨의 누나 영희씨는 『설마 했는데 진짜 이렇게 죽어서 돌아왔느냐』며 망연자실.
최원기.강홍준.김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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