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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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제2부 수로부인(水路夫人) 해가(海歌) 48 사랑하는 사람과단둘이 지낼 공간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 호텔방이 우변호사와 함께 사는 「우리집」이라면….사랑하는사람과 더불어 한지붕 밑에 살며 사랑 나누는 일의 더할 나위없는 가치를 생각하고 속이 메었다.
연분홍 장미꽃잎 같이 결이 고운 아리영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우변호사는 자신에게 묻듯 신음했다.
『어떡하지?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그의 머리를 두 팔로 싸안으며 아리영은 울었다.
한집에서 함께 살고 싶다.소망이 있다면 단지 그것 뿐이다.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이혼해야 한다.아리영은 남편과 헤어지고,우변호사도 아내와 부부관계를 해소해야 한다.그게 될 법이나 한 일인가.목장과 농장일을 사위에게 통째로 내 맡기고 있는아버지 얼굴 위에 우변호사 장모의 단정한 한복 맵시가 겹쳐 어른거렸다.
-어떻게 하긴.이대로 애태워 사랑하다 죽을 수밖에! 심장에 자잘한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아리영은 그를 반듯하게 누이고 천천히 부드럽게 온몸을 쓰다듬었다.남자의 육신이 이렇게 사랑스러운 것인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몸가락이 쉬이 치솟았다.
우변호사는 용수철처럼 일어나 아리영을 쓰러뜨리고 몸속으로 들어왔다.따뜻하고 든든한 충만감.이것이 사랑이다.
그는 크게 동하고 있었으나 절정에의 오름새를 잘 조절해냈다.
재빨리 머리를 들어 눈을 부릅뜨고 상하 좌우를 보며 아랫배에힘주어 숨쉬기를 잠시 멈춰 앙분을 다스리는 것이다.
이 사출(射出) 억제의 비법(비法)은 「제너럴」한테 배운 것이라며 웃었다.중국의 옛책 『선경(仙經)』에 있다고 했다.
『그분은 한문도 하시나봐요.』 『영어책에서 봤답니다.틈만 나면 도서관에 가서 희귀본을 찾아 읽는 것이 그분의 취미지요.』『선경』에는 또 하나의 억제법이 실려 있다 했다.
왼쪽 가운뎃손가락과 집게손가락 끝으로 음낭 뒤쪽을 누르며 숨을 길게 토하고 어금니를 수십차례 곱씹는다는 것이다.
그 일련(一連)의 노력이 눈물겨웠다.
절정의 감미로운 순간을 기다리다 누리기만하면 되는 여자의 생리는 그에 비기면 얼마나 수월하고 우아한 것인가.어쩌면 이 피동(被動)의 생리 때문에 여성은 모권(母權)사회의 화려한 권좌를 잃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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