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에 가렸던 제1연평해전 승전 9년 만에 전승비 세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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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연평해전 승전기념 전승비 제막식이 15일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열렸다. 전승비 앞에 도열한 해군 장병들이 순국한 해군 용사들에게 경례하고 있다. 전승비는 우리 함정과 북한 경비정의 충돌 장면을 형상화했다. [사진=변선구 기자]

1999년 6월 15일 북한 경비정<左>에 '충돌작전’을 펼치고 있는 해군 고속정. [중앙포토]

1999년 6월 15일.

북한 해군 경비정이 오전 9시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다. 즉각 출동한 해군은 고속정과 초계함을 동원해 선체를 부딪쳐 강제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북한 경비정에 대응했다. 놀란 북한 경비정은 먼저 사격을 해왔고 해군도 대응 사격을 했다. 그 결과 14분 만에 북한 어뢰정 1척이 격침되고 경비정 4척이 크게 파손됐다. 제1연평해전 얘기다.

하지만 전과로 볼 때 분명한 승리였던 이 해전에서 현장을 지휘했던 지휘관들은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 당시 햇볕정책을 앞세운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접근법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그랬던 제1연평해전이 9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해군은 15일 제1연평해전 9주년을 맞아 경기도 평택 2함대사령부 내 충무동산에 전승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가졌다. 해군 함정과 북한 경비정의 충돌 장면을 형상화한 전승비는 길이 14m, 폭 10m, 높이 13.5m로 앞면에는 비문이, 옆면에는 참전 지휘관들의 명단과 상황 개요 등이 새겨져 있다.

당시 2함대 사령관이었던 박정성(해사 25기) 예비역 소장은 이날 “북한 해군의 기습에 대비해 6개월 동안 피나는 훈련을 했었다”고 9년 전을 기억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만 해도 제1연평해전에 관한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박 전 사령관은 진급도 못 하고 예편할 때까지 정부의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반면 해전에서 패한 북한 측은 정반대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제1연평해전에서 패한 북한 서해 함대사령부 소속 8전대를 오히려 격려했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당시 김 위원장이 북한에선 귀한 쇠고기를 보내주고 패장인 8전대장을 보직 해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북한의 8전대장은 3년간 절치부심하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서해교전)을 일으켰다. 북한 경비정은 NLL을 넘은 뒤 이를 막는 해군 고속정을 향해 함포 사격을 집중해 침몰시켰다. 북한은 미리 준비해둔 육군용 로켓포를 발사해 우리 고속정 선체의 아랫부분에 구멍을 냈다. 물이 새들어가 빨리 침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해군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다.

제2연평해전 뒤에야 군 당국은 설사 북한 경비정이 NLL을 넘어와도 먼저 사격해선 안 된다는 해군의 작전 절차를 고쳤다.

제1연평해전 때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처장이었던 정옥근 해군참모총장은 이날 제막식 기념사에서 “제1연평해전은 적(북한 해군)에겐 ‘도발하는 곳이 침몰되는 곳’이라는 두려움을 심어줬고, 장병들에겐 전승의 자신감을 심어준 전투”라고 말했다. 

글=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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