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내가 본 "중경삼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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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특징적인 대중문화현상을 해석해 주는 문화칼럼 「유하의 대중문화 산책」을 신설합니다.유하씨는 시인이자 영화감독으로 대중문화전반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월요일字에 게재합니다.
[편집자註] 왕자웨이감독의 『중경삼림』이 개봉됐을 때 필자는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그 이전에 선보였던 『열혈남아』『아비정전』이 소수 왕자웨이 매니아를 탄생시켰을 뿐 주류 관객층에겐 철저히 외면당했기 때문이다.홍콩누 아르가 서서히 퇴조할 무렵이라곤 하지만 어쨌든 오우삼류의 총싸움 유혈낭자극에 푹 절어있던 관객들에게 과도하게 영상적인 것과홍콩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든 「정신」의 깊이가 융합된 왕자웨이의작품들이 생경한 풍경으로 다가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실이었는지도 모른다.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중경삼림』은 성공을 거뒀다.몇가지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그동안 형성된 이른바 컬트팬들의 끈질기고도 열정적인 입선전이 이제 빛을 발하는게 아닌가.쉬커(徐克)신드롬을 왕자웨이 신드롬으로 바꿔치울 정도로 이제우리 관객의 안목도 높아진건 아닌가.그 막연한 생각들.적어도 영화를 관람하기전까지는 그랬다.그러나 영화를 보고난 후 그 영화의 성공이 그리 놀랄 만한 사건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수있었다.『중경삼림』 은 너무 「대중적」인 영화였다.
『중경삼림』은 일종의「향수 영화」다.한국관객들은 『캘리포니아드리밍』을 들으며 팝송 키드였던 그 옛날을 추억한다.
필자 역시 캘리포니아 드리밍의 멜로디를 타고 빛바랜 교복시절의 영상을 만나러 간다.王감독이 갖고 있는 추억의 국적과 우리관객의 추억의 국적은 마마스 앤드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이라는 미국의 유행가 멜로디 속에서 하나로 겹 쳐진다.「금발」가발을 뒤집어 쓴 「동양인」 린칭샤(林靑霞).그 금발 린칭샤의 도착적 이미지가 바로 팝송 키드 왕자웨이의 내면임과 동시에그와 즐거운 니힐리즘으로 포옹하는 우리의 내면인 것이다.
인스턴트 사랑만이 붐비는 현실,그리고 짙은 노스탤지어를 내장한 복고주의시대의 인간상…『중경삼림』엔 뮤직비디오적 감각이 있고 총격전과 살인이 있고 휘황한 네온사인과 홍콩의 세기말적 무드가 있다.그리고 그런 모든 영상의 편의점 속에서 기한이 지나버린 순정만화의 사랑을 뒤적이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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