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해를 비춰 국민의 외투 벗겨야” MB “무책임하게 재협상 얘기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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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주년 현충일 추념식이 6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렸다. 추념식에 참석한 김양 국가보훈처장,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 이용훈 대법원장,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고현철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한 사람 건너 박세직 재향군인회장,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박상천 통합민주당 대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왼쪽부터)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은 현충일인 6일 불교계 지도자 5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 스님, 진각종 총무원장 회정 스님,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자승 스님,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이었다. 쇠고기 파문으로 인한 민심 이반을 추스르기 위해 대통령이 조언을 구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일부 참석자는 미국과의 쇠고기 재협상을 이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쇠고기 협상이 옳았느냐와 별개로 군중심리는 한번 뭉치면 합리적 설득이 듣지 않으니 진흙땅에 풀을 덮는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 “쇠고기 재협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적이 다른 곳에 있더라도 명분 차단을 위해 재협상이 필요하다” “소나기는 피해야 한다. 해를 비춰 국민의 외투를 벗겨야 한다” 등의 발언들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한·미 양국 업계가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각각 수입·수출하지 않겠다는 자율규제 결의를 추진하고 있는 것을 언급하며 “사실상 재협상”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문제의 핵심은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라며 “과거 일본도 자동차 교역이 문제가 됐을 때 자율규제에 합의하면서 문제를 풀었다”고 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지금 재협상을 요구하면 통상 마찰 등으로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주력 수출 품목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후유증이 있는 줄 뻔히 알면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재협상을 무책임하게 얘기할 순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사실 야당 내부도 반으로 나뉘어 있는 것 같다. 재협상을 약속했다가 경제에 충격이 오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며 “국내 문제라면 내가 얼마든지 결단을 할 수 있지만 이건 국제적 통상문제라 무책임하게 할 수 없다”고 설득했다.

참석한 불교계 지도자들은 “대통령의 말을 들으니 고충을 알겠다. 하지만 국민에게 설명이 잘 안 돼 있으니 적극적으로 알리라”고 말했다고 청와대 측은 전했다.

일부 참석자는 “지금은 소나기가 아닌 장마와 같은 분위기다. 쇠고기 파문 초기에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게 문제”라거나 “국민에게 ‘나도 재협상하고 싶은데 여러 문제들이 있다’고 적극적으로 홍보하라”고 이 대통령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쇠고기 문제로 시위가 시작됐지만 다른 세력들이 가세하면서 상황이 변하고 있다”거나 “요새는 세 살만 돼도 인터넷을 하니 정부가 여론을 이끌기가 참 어렵다”고 우려한 참석자들도 있었다고 청와대 측은 밝혔다.

지관 스님이 한반도 대운하 건설과 관련해 “반대 의견이 많으니 보류하는 게 어떻겠느냐”라고 말하자 이 대통령은 “충분히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겠다”고 대답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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