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 높이 더 높이’ 한국신기록 ‘맞수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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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라이벌 구도’가 한국 육상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엷은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최근 필드와 트랙에서 쏟아지는 한국신기록의 이면에 라이벌 구도가 작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제62회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가 열린 5일 대구 스타디움. 육상 관계자들은 “(최)윤희도 이제는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7∼8년 가까이 이 종목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해 온 최윤희(원광대)를 긴장시킨 주인공은 ‘신예’ 임은지(부산 연제구청). 그는 지난해까지 여자 7종경기 선수였다. 그러나 올 시즌부터 장대높이뛰기로 주종목을 바꾸면서 최윤희의 아성에 강력하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날 둘을 뺀 나머지 선수들은 3m40㎝의 벽을 넘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나홀로’ 행진을 벌인 끝에 최윤희가 적당한 높이에서 금메달을 확정했겠지만 이날은 달랐다. 임윤지의 추격에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최윤희가 먼저 3m80㎝를 넘었다. 이어 임은지도 같은 높이를 성공시켰다. 개인최고기록이 3m70㎝인 임은지였지만 향상된 실력을 과시하듯 자기 최고기록을 10㎝나 능가했다.

다음에 임은지가 3m90㎝를 신청했다. ‘설마’하던 최윤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추격자가 없던 ‘장대’ 종목에 간단치 않은 라이벌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임은지가 아깝게 실패하자 최윤희는 4m로 바를 올려 놓고 성공시켰다. 육상인들은 “임은지의 이날 도전이 실패로 끝났지만 최윤희에겐 큰 자극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4m를 넘은 최윤희는 자신의 한국기록(4m11㎝)보다 4㎝ 높여 4m15㎝에 도전했지만 한국신기록의 기회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29년 묵은 남자 100m 한국기록(10초34) 경신에 대한 기대가 최근 높아진 것도 ‘라이벌 구도’ 때문이다.

임희남(광주광역시청)과 전덕형(대전시체육회). 두 스프린터의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자기 최고 기록은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서 10초42를 끊은 임희남이 2006년 10초48을 뛴 전덕형에게 앞선다. 하지만 지난달 종별선수권 이후 전덕형이 3연승 중이다. 캐론 콘라이트(미국) 국가대표 단거리 코치는 “임희남은 순간 가속력이, 전덕형은 피니시가 좋다. 두 선수의 경쟁으로 한국기록이 깨질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구=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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