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폭파전문가, 그 명성 그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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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세계바둑오픈 결승전 제3국
[제3보 (46~70)]
白.趙治勳 9단 黑.朴永訓 5단

아니나다를까. 조치훈 9단은 50으로 푹 들어왔다. 51로 철주를 내리자 52로 품을 넓힌다. 옹색하지만 목숨만 살자고 한다.

趙9단은 분명 전면전 스타일은 아니다. 정면으로 힘을 겨룬다면 화력 좋은 박영훈 쪽이 우세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격전은 양상이 다르다.깊이 파고든 다음 목숨만 건지자는 것이어서 이런 접전에선 행마의 강력한 힘보다는 미세한 사활의 수읽기가 더 요구된다. 그런데 이 분야는 趙9단이 평생 경험해온 전공분야나 다름없다.

53의 포위에 54의 궁도 넓히기.이때 등장한 박영훈의 55가 하도 통렬해서 검토실에선 한동안 단명국 얘기가 나돌았다.백대마의 출구는 다 막혔고 살더라도 중상을 면치 못한다는 분석이었다. 우선 `참고도` 백1, 3은 흑4, 6으로 가볍게 죽는다(백A는 흑B로 사망).다른 수도 다 안된다. 그런데 58이라고 하는 비상식적인 행마가 등장했다.

형태상 자충수 비슷해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수였다. 눈앞에 널린 모두가 죽음의 문이었다.

그런데 대악수같은 이 수가 유일하게 생문(生門)으로 통하는 수였다. 61로 파호할 때 62로 궁도를 넓혀 대마는 서서히 사지를 벗어난다. 63 때 66으로 재차 넓히면 67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때 68과 70으로 대마는 포위망을 뚫었다. 암흑 속의 백이 퍼즐과도 같은 단 한줄기 삶의 코스를 정확히 밟아 결국 햇빛을 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과연 폭파전문가다운 솜씨다. 그러나 아직 산 것은 아니다. 게다가 우측 백도 슬그머니 미생마로 변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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