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Report] 유전개발 성공하려면 ‘3력’부터 키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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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최근 정부와 민간 모두 해외 자원, 특히 해외 유전을 개발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각각 자국의 국영석유회사(NOC)를 앞세워 에너지 자급률을 높여 유가상승에 대비한다는 취지로 유전과 가스전 등 해외자원 확보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중국은 현재 약 40여 개국에서 60개 이상의 석유개발 사업을, 우리나라의 석유공사도 2006년 말 현재 약 14개국에서 23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해외 유전 개발은 고위험 사업이다. 기술·경제·정치적 문제로 인해 좌초하거나, 실제 개발이 되어도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제성이 좋은 유전은 대부분 개발이 완료된 상태며, 남은 유전들은 대부분 경제성이 떨어지는 오지의 한계 유전이다. 또한 자원민족주의가 팽배한 데다 대부분 자원 보유국의 재정상태가 과거보다 호전돼 있는 현 시점에서 경제적인 개발가치가 있는 유전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른바 대박의 꿈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설사 매장량이 풍부한 유전을 확보했다 해도 요즘처럼 에너지 관련 전 분야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는 시기에는 개발·생산 비용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가령 해상에서 유정 한 개를 시추하는 비용이 수년 전만 해도 100만~200만 달러 정도였지만 지금은 1000만~2000만 달러로 올랐다. 원자재 품귀와 철강 및 에너지 가격의 상승, 그리고 인력 확보의 어려움이 해외 개발사업 여건을 아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선 어디에서 해외 유전을 개발할 것인가를 따져보자. 석유나 가스는 지역적으로 편중이 심하고, 특히 대규모 유전 발견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북극해, 중동, 그리고 남미 등이다.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는 법이나 제도 등의 문제로 사업성이 매우 불투명해 외국의 대기업도 고전하고 있다. 북극해 지역은 지리적으로 접근이 어렵고, 연간 작업 가능 일수가 적어 생산비가 매우 높다. 러시아의 스토크만스크 지역이나 야말 지역 프로젝트 등 현재 진행 중인 사업들도 이러한 고비용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동의 이란·이라크는 가능성은 높지만 이미 외국 기업들이 대부분 유전을 선점하고 있는 데다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해 우리의 참여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이란은 오일달러가 풍부해 해외자본의 진입을 크게 반기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남미도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자원민족주의와 자국의 석유 수요 증가로 양질의 유전에 대한 투자는 힘든 상황이다. 개발 가능한 지역이 별로 남지 않았고 우리가 진출할 수 있는 곳은 경제성이 떨어지는 곳이 대부분이란 얘기다.

둘째, 우리나라가 유전 개발과 석유 생산에 경쟁국보다 비교우위에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우리의 해외 자원 개발 역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짧고, 투자 규모도 작다.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들에 비해 경쟁력이 훨씬 뒤떨어진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도 우리는 정보·외교·기술·자본·인력 어느 하나 나은 것이 없다. 구호만 앞세우고 실질적인 경쟁력 개선에 대한 투자와 노력을 소홀히 한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석유시장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엑손모빌과 더치셸, BP 등 석유 메이저들도 자원 개발 프로젝트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가령 2007년 엑손모빌과 코노코 필립스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베네수엘라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로열더치셸도 2006년 사할린2 프로젝트의 지분을 절반 이상 러시아의 가스프롬사에 넘겨야만 했다. BP도 러시아 이르쿠츠크 지역 가스와 석유전을 소유하고 있는 TNK-BP의 지배권을 가스프롬에 넘겼다. 정치적 압력에 따른 결과지만 자원 개발의 어려움을 일깨워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자원 보유국은 언제든지 자원 개발에 따른 이익을 개발자로부터 환수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세금이다. 외국 회사가 들어와 탐사와 개발을 마치고 생산에 들어가기 시작하는 시기에 많은 나라에서 이런 저런 명목으로 세목도 늘리고 세율도 인상해 개발이익을 적극적으로 회수하고 있다. 이게 바로 자원민족주의의 본질이다. 최근 에너지헌장조약(Energy Charter Treaty)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국제적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자원 보유국의 횡포에 대응하기 위한 효과적 수단은 없다.

셋째, 국제 유가의 현 추세가 지속될 것인지도 눈여겨봐야 한다. 고유가 시대에 확보하고 개발한 프로젝트는 저유가 시대가 되면 바로 애물단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같은 초(超)고유가 시기에 정부가 나서서 자원 개발을 독려하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유전 개발을 포함한 상류 부문 투자에서 일정 수준의 이익을 얻으려면 적어도 고유가-저유가의 경기순환을 두 번 정도 감내할 수 있는 자본력과 기술력, 지구력이 있어야 한다. 과연 우리나라 정부나 기업이 그런 능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 점을 무시하고 무분별한 정책적 지원으로 해외자원 개발에 참여한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고공행진을 하는 지금은 때가 아니다. 일본도 1970년대의 석유위기 이후 석유공단을 통해 과감하게 해외 자원 개발에 투자했지만 80년대 후반 이후 지속된 저유가 영향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 따라서 일본 석유공단은 2000년대 초 구조조정으로 문을 닫았다.

해외 자원 개발에는 무엇보다 끈기와 정열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같은 자원 빈국이 해외 자원 개발에서 성공하려면 지금 같은 구호성 정책이 아닌 장기적 마스터 플랜이 필요하다. 이 마스터 플랜에는 국가의 장기적 재정 지원, 전략적 비전, 정부와 기업 및 학계의 협력체제, 평생 직업으로 자원개발을 택할 수 있는 전문인력의 양성이 포함돼야 한다. 앞으로 수년 내 자급률을 몇% 올리겠다는 식의 발상은 지양하고, 적어도 20 ~30년을 내다보는 전략적 마인드와 착실한 준비 후에 투자의 적기를 노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용헌 일본 아태에너지 연구센터 부소장 (jung@aperc.ieej.or.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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