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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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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부자가 많이 사는 나라가 부강한 나라다. 부자가 많이 사는 도시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도시다. 세계 최고 부자들이 선호하는 도시는 가장 자유롭고, 가장 민주주의적인 도시다. 언뜻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내용을 따져보면 이 말이 꼭 맞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포브스지 최신호를 보자. 여기엔 세계 최고 부자들이 살고 있는 주요 도시 리스트가 있다. 이 리스트에 따르면 현재 세계 최고 부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도시는 뉴욕이다. 뉴욕엔 31명의 부호가 살고 있고, 그 다음이 모스크바로 23명이다. 그 다음은 홍콩으로 16명, 4위는 10명이 살고 있는 파리다.

유럽이 둘, 미주가 하나, 아시아가 하나다. 하지만 과연 모스크바가 유럽에서 런던이나 로마.제네바 등을 앞서는 자본주의적인 도시일까. 부자들이 살기에 편하고, 부자들을 시기하기보다는 존경하는 분위기가 넘치는 쾌적한 도시일까. '아니다'는 쪽이 절대다수일 것이다.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홍콩이 과연 도쿄를 앞설 수 있을까. 더군다나 홍콩은 1국 2체제라지만 공산주의 국가 중국의 영토가 아닌가. 그러니 세계 최고 부자들이 살고 있다고 해서 가장 자본주의적이거나 살기좋은 도시라는 생각은 뭔가 잘못된 것 같다.

방향을 바꿔 생각해보자. 뉴욕이나 모스크바.홍콩.파리 같은 도시가 돈을 벌기에 가장 좋은 도시일까. 그럼 요즘 한창 뜬다는 중국 상하이나 인도.브라질의 주요 도시들은 어디로 갔나. 또 중동의 산유국들은 어떤가. 그러니 이것도 뭔가 2% 정도 부족한 설명 같다. 결국 이렇게 따져가면 세계 부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거나, 혹은 부자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나라라고 해서 가장 자본주의적이거나, 가장 자유롭고, 가장 민주주의적인 도시와 국가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니 '가장 많이'라든가, '가장 부자'라는 단어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

부유한 나라들이 대외원조.투자.무역.이민.평화유지 및 환경 등의 정책을 통해 빈곤국을 얼마나 배려하는가를 따지는 개발공약지수(CDI)를 보더라도 세계 최대 원조국가인 미국과 일본은 꼴찌에 머물고 네덜란드.덴마크 같은 소국들이 오히려 1, 2위다. '최고'는 꼭 '최다'와 연관성을 갖지는 않는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