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사람따라 바뀌는 정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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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민자당이 신장개업(新裝開業)을 선언했다.어느정도 예상됐던 일이다.노태우(盧泰愚)씨가 부정하게 모은 돈으로 운영해온 당임이백일하에 드러난 이상 간판을 바꿔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이로써 5년 10개월동안 집권당 자리를 지켜온 민 자당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돌이켜보면 정당사에 유례없던 거대정당이었다.합당때의 소속의원이 무려 216명이었다.개헌선인 200석을 거뜬히 넘겼다.『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만 빼고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장담이 허풍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덩치가 커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문제점도 정비례했다.우선 견제기능의 약화를 불렀다.통합은 권력자의 부정축재를 감시하고 막기 어려운 역학구조로 이어졌고 결국 세계를 놀라게한 부패로 이어졌다.자체의 몸집을 추스르는데도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해 정경(政經)간의 유착을 불렀다.
상이한 세력들의 동거는 내부권력 투쟁을 심화시켰다.통합은 「민자당후보는 바로 차기대통령」이란 등식을 성립시켰다.한지붕아래모인 민정.민주.공화계 세가족은 곧장 생사(生死)를 건 대결에들어갔다.이과정에 내각제도 중요한 이슈로 부상 했다.대결은 명분과 논리를 바탕으로 하지않고 오직 권력욕 아래 비수를 숨긴 암투로 점철됐다.
상황이 일단락된 후의 모습은 마치 전장(戰場)을 방불케했다.
합당의 주역중 盧씨는 탈당했고 이제는 감옥에 갇힌 상태다.사실상 축출당한 김종필(金鍾泌)씨는 자민련을 창당해 딴살림을 차렸다.그에따라 공화계는 소멸됐고 민정계는 풍전등화( 風前燈火)의운명에 처해있다.
이제 승리자(?)인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자신의 추종세력으로 새당을 만들려 하고 있다.
역사상 한국 집권당의 공통적인 특성은 집권자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개인정당이었다.자유당은 이승만(李承晩),공화당은 박정희(朴正熙),민정당은 전두환(全斗煥),노태우는 3당합당을 권력기반으로 했다.이들 개인이 사라질때 정당도 사라졌다.
신당의 장래 역시 과거 집권당들의 운명을 따를지 알수 없다.
신당은 총선성적이 기대에 크게 못미치면 바로 간판을 다시 바꿔달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그다음 金대통령의 퇴임을전후해 또 한번의 고비를 넘겨야 한다.그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언제나 인물이 아닌 정책과 노선으로 뿌리내린 정당이 나타날지를 새삼 생각해본다.
김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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